난 이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한다 마음을 울리다

그녀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가족의 생계에 좀더 보태려고, 또는 나이 먹은 여성으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캐셔일을 시작했다, 하루 8시간을 화장실도 못가고 일해서 80만 원 남짓을 벌었지만 그 정도로도 만족했다. 립스틱은 빨간색만 발라라, 귀걸이는 빼라, 시시콜콜한 간섭을 받고 미소를 짓지 않는다고 '친절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꾹 참고 일했다.


세번째 재계약 날, 8개월을 계약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계약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첫번째 3개월, 두번째 6개월, 그리고 이번이 8개월. 모두 17개월. 18개월을 계속해서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17개월로 끝이 난다. 그 후에는? 없다. 일을 그만둬야 한다. 회사는 그 후 새로운 사람들을 뽑거나 외부용역에 맡기겠지. 회사는 그런 식으로 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했다.


"아이들이 우리처럼 그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정말 슬퍼져요. 아, 아이들이라도 꿈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참을 수 없어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을 했다. 계산대를 멈추고 매출 1위라는 매장을 정지시켰다. 환호, 기쁨, 처음으로 느끼는 해방감. 자신들에게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들떴다. 요구조건은 세 가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차별 시정, 고용 안정"  회사는 점거를 풀면 '선처'하겠다고 협박과 회유를 했지만 그/녀들은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점거는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으니까.


회사는 요구를 거절했고, 매장은 봉쇄됐다. 그리고 전경이 들어와 그/녀들을 끌어내고 연행해갔다. 백 여명을 끌어내기 위해 3,000명이 동원됐다. 물대포도 쐈다. 소화기도 뿌렸다. 방패로 찍기도 했다. 이유는 불법 점거.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범죄였다고 말한다. 재벌들의 돈은 지키면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지키지 않았다.


이후에 여러 차례 다시 점거를 했지만 전경의 진압으로 쉽게 다시 끌려나왔고 여론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다. 회사측의 계속되는 회유와 협박. 파업을 그만두면 다시 일하게 해주겠다는 비열한 유혹. 돈도 못 벌고 살림을 못 하게 되면서 가족들의 시선도 곱지 않아졌다. 계속 늘어나는 빚과 생활고에 못 이겨 그만두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드뎌 전기가 끊어졌다", "급식비 못 내서 점심 못 먹으면 물이나 먹지 뭐" 하는 아들의 문자에 가슴이 무너져내리지만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너무 억울하다고.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래야 하냐고. 정당한 일이라서 시작했는데 이대로 그만두고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한다.

"같이 하라는 얘기는 감히 안 해요. 저도 옛날에 그랬어요. 차도를 막고 여러 사람한테 불편을 끼치고 투쟁을 하는 게 불편하고 짜증도 나겠지만.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저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저럴까 한 번쯤은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 정도? 우리 입장이 되어 달라고는 절대 안 해요. 입장은 누구나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너무 억울해요.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만 잘살겠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월급 많이 달라고 싸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러 사람한테 우리가 빛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그런 말 들이면요, 지금은 그럼 우린 뭐야, 다른 사람들한테 빛이고 희망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구렁텅이에 들어간 기분인 건데. 우리는 뭐야, 남만 다 빛내 주고 우리는 왜 이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막막감과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도 계속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적은 이 상황에서 그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가 쓴 한 글을 봤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624024536&s_menu=사회)


그는 “촛불시위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촛불을 켜놓고 공부한다고 했다. 엄마한테 외려 그 아이들이 '엄마,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컴퓨터도 안 되니까 집중이 잘 돼'라고 했다고…. 촛불만 보면 그 얘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촛불을 차마 못 켜겠다." "쇠고기는 생존권 투쟁이 아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생존권 싸움이다. 순간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투쟁이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내 아이가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생활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문제다. 자식들의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 먹고 살 길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다."


내가 축제처럼 즐기는 촛불시위가 어딘지 거북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보기에 촛불시위는 팔자 좋은 사람들의 투쟁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 말한다. "우리 조합원들은 '비정규 투쟁의 상징'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상징은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전기세, 수도세 낼, 버스 탈 돈이 필요한데…."


파업 1년째, 비정규 투쟁의 상징이라며 추겨 세우던 언론과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백한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다. 나 역시 그 사람들을 실질로 도운 적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죄책감에 책장 넘기기가 무거웠다.


대체 내가 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급한 마음에 우선 CMS 후원을 신청했지만 막막함은 가시지 않는다. 이랜드, 기륭전자, KTX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진행 중이다. 지긋지긋한 노동유연화, 숨이 막힌다. 고용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고용주의 자유이며, 필요할 때 고용하고 필요 없으면 해고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조건이 안 맞으면 일 안 하면 되는 거라고...  그렇지만 이런 세상은 너무 참혹하다.


노동자가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벌고 굶을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가 발달해 있지 않은 나라에서 직업을 잃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싸워서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권리를 얻어내고, 파업권과 단체교섭권을 얻어냈다. 그러나 지금, 이런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손배가압류라는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파업을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배상을 하라는 거다. 수십 억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은 노동자들에게는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2003년에 두산의 노동자였던 배달호 씨는 기막힌 손해배상금에 결국 분신을 선택했다. 이랜드 조합원들에게도 260억 원의 손해배상금이 걸려 있다. 자본이 점점 유연한 노동, 쉽게 고용하고 쉽게 자를 수 있는 노동자들을 원하면서, 삶의 질은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바꾸고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나? 답은 보이지 않고 답답하다. 지금의 나는 그저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그들의 싸움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답답하다.


덧글

  • wham85 2008/07/17 06:49 # 답글

    글 잘봤습니다.
    참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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