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일본은 할 만큼 했다?

 

논란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 박유하는 고노 담화의 가치와 성과를 인정하자고 이야기한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된 이상 고노 담화에서 밝힌 정도가 일본이 할 수 있는 사과의 최선이라고 말이다. 그 후 조성된 아시아여성평화기금 또한 형식이 민간일 뿐 정부 출연이 90%이니 사실상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속죄의 마음이 담긴 보상금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계속해 국가 차원의 배상과 법적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일본은 이미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그 사과도 못 받아들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니 일본에서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이제까지의 성과도 사라져버린다. 이제는 일본의 사과를 인정하고 양국의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 내가 읽기에 저자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며칠 전 한일 양국 정부간 타결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이 합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에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입장을 본다.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우리 한국에겐 일본 정부의 사과를 강제할 만한 힘이 없다, 양국의 협력을 바라는 미국의 압박이 심하다, 외교라는 건 양쪽이 양보하는 타협이 아니겠느냐... 이 모든 변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여기서 만족하자.


과연 그러한가.

 

과거의 불가능, 현재의 현실

 

아베 총리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직접 낸다. 이 정도면 진일보한 성과가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까지 일본이 절대 받지 않을 요구를 하며 싸움만 할 것인가? 이러다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고 영영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나도 이 말들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마디 덧붙인다. ‘현재까지는

 

현재까지는일본은 절대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의 국가범죄로서 인정할 마음이 없다. ‘현재까지는우리에게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낼 만한 힘이 부족하다. ‘현재까지는국제관계의 구조도 일본의 사과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다. ‘현재까지는우리가 바라는 것, 즉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이뤄내기 불가능하다. ‘현재까지는분명 그렇다. 하지만 현재까지만그렇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과거의 불가능을 현재의 현실로 만들어낸다. 1930년대 강대한 일본제국의 식민지에서 조선이 독립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립할 줄 몰랐으니까 많은 이들이 부역하고 배반했다. 그러나 독립의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200년 전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흑인 노예가 시민권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오늘날 흑인 대통령을 보고 있다. 신분의 벽도, 성별의 벽도 하물며 베를린 장벽도 영원히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많은 현실의 벽이 있었나? 그리고 역사의 진전과 함께 그 높고 견고한 벽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허물어져갔던가.

 

마르크스는 인간은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나간다고 썼다. 이 말은 우리가 구조적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에 따라 주어진 조건은 달라지는 법이다. 적어도 우리 후손들은 우리와 다른 조건 아래에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인간은 전진해왔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역사적 유물론이다.

 

현재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진실과 정의를 포기하는 건 긴 역사적 전망을 갖지 못한 태도다. 현재는 불가능해도 미래에는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이란 발언은 그래서 몰역사적이다. 10년 후가 안 되면 100년 후에라도 진정한 진실과 정의는 달성되어야 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렇게 오래 걸린다면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텐데 어떻게 책임질 테냐?”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이 사안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신다고 끝나는 일인가? 성노예로 끌려간 모든 당사자가 죽고 없어지면 더 이상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 지배국가가 피지배국의 국민에게 저지른 범죄이며, 인류의 존엄성을 훼손한 만행이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할머니들이 일본에 공식적인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저 개인 차원의 만족과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다. 끔찍한 범죄에 대한 반성,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기 위해, 그리하여 정의가 이 땅 위에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고, 누군가는 계속해 고발의 의무를 져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들을 위한 지원금 얼마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국민모금으로 해야 할 일도 아니다. 혹이나 할머니들의 생계가 어렵다면, 그것을 책임져야 할 것은 다른 아닌 한국 정부다. 나는 할머니들이 끝내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세상을 뜨신다면, 그 사과를 받아낼 책임을 정부가 위임받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를 계승한 국가라면, 100년이든 200년이든 그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수탈한 일본제국으로부터 이어진 국가라면,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일본과의 협력과 우호 관계를 들어 화해의 필요성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일본과의 적대행위로 나타날 이유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민족문제를 빌미로 한 극우적 책동일 뿐,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이 의무를 잊지 않는다면 역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언젠가 일본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언젠가 일본이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것이냐고 회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난 역사를 믿는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을 믿는다.

 

한 해가 가고 이제 또 다른 해가 떠오를 것이다.


덧글

  • 새해부터뭔솔 2016/01/01 03:37 # 삭제 답글

    이런 말 누가 못합니까? 보면 꼭 대안도 없어 감성에만 푹 빠져서는 님은 피해자분들께 뭐라도 도와드리고 이런 말 해요?
  • sunlight 2016/01/01 08:28 # 삭제 답글

    그 사과의 주체는 누구인가? 소위 말하는 전범인가? 일왕인가? 아니면 당시의 일본군대에 소속해서
    위안부들에게 몹쓸 짓을 한 병사들인가?

    아베 총리가 사과를 했는데,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 이거 뭐, 홍길동도 아니고(호부호형) ...

    국제법은 정의로울 수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 국내 형법처럼 처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나라의
    역량이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띨띨한 사람의 '정의'에 맞춰 움직이는 게 아니다.
  • 백범 2016/01/01 12:32 # 답글

    허풍떠는 바보들은 죽어야 됨.

    한국인들의 평균수명은 25살, 26살이면 적당해요. 본인들만 "지능이 낮아서" 그나이 먹도록 애기짓을 할 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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