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생각하다. 물음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는 당연한 결과인가?

성매매를 생각하다. 섹스는 노동이 될 수 있는가에서 이어짐



자본주의의 탁월한 장점 중 하나는 누구든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예컨대 조선 시대에는 중인 이상만 갓을 쓸 수 있어서 평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갓을 쓸 수 없었다. 복식이나 가마 종류, 제사까지도 신분에 따라 구분되었다. 자본주의와 함께 이런 거추장스러운 계급 구분의 시대는 갔다. 돈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 돈이 있는 사람은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다. 여자까지도.

 

쉽게 물어보자. 성의 상품화는 좋은가? 좋지 않다. 그렇지만 성의 상품화를 막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적 서비스가 거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이며, 사실상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게 자본주의인데 성행위라고 예외가 될 수 있나? 이 입장은 성적 행위의 상품화를 다른 노동상품화와 다르지 않게 본다. 어차피 몸과 마음을 파는 건 다른 노동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누구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도 일을 나가야 하고, 누구는 고용주나 진상 고객이 주는 스트레스로 속이 터져도 방긋방긋 웃어야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마르크스는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다. “매음은 노동자가 보편적으로 몸을 파는 행위의 어떤 특별한 표현에 지나지 않다."

 

비단 성매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성의 성적 매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모습을 수없이 볼 수 있다. TV에서 몸매를 뽐내는 걸그룹들이나 섹시화보를 찍는 여성들은 분명히 자신의 성적 매력을 팔고 있다. 수많은 남성들의 클릭을 유발하는 레이싱걸이나 치어리더들은 어떨까? 왜 수려한 외모의 여성만이 스튜어디스가 되는가? ‘용모단정한’ 여성 바텐더를 고용하는 이유는 무얼까? 자본주의체제에서 여성의 성적 매력은 거래가능한 하나의 자본이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는 남성들은 그 매력을 ‘즐긴다’.

 

그런 식의 성의 상품화와 본격적인 성매매는 다르다. 그러나 성매매의 경계는 애매하다. 무엇이 본격적인 성매매인가? 법적으로는 돈을 대가로 성기 대 성기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매매이며 처벌의 대상이다. 입이나 항문 등 신체의 일부를 이용한 행위는 유사 성매매로 역시 처벌의 대상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성매매’라고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키스만 해주는 키스방은 어떤가?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도 성매매 여성일까? 스트립쇼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신체접촉도 시각적 만족도 없이 전화로 폰섹을 해서 만족시켜주는 경우는 어떤가? ‘2차’는 나가지 않고 남성들과 술을 마셔주며 가볍게 터치만 하는 경우도 성매매라 할 수 있을까? 듣자 하니 최근에는 ‘귀청소방’이 생겼다고 한다. 섹시한 차림을 한 여성들이 남자를 무릎 위에 눕히고 귀를 파준다고 한다. 성매매의 경계를 어디다 그어야 할까?



포르노에 대해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포르노영화에서 배우들은 돈을 받고 다종다양한 성행위를 펼친다. 사람들은 그 영상을 구매해 보면서 성적 만족을 얻는다. 그렇게 봤을 때 포르노는 성매매가 아닌가? 포르노배우는 사실상 돈을 받고 섹스를 해주는 것이며, 관객들은 그 섹스를 단체구매한 셈이 아닌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도 포르노를 보는데, 그렇다면 나는 성매매에 참여하는 것도 모자라 불법으로 다운로드해서 보니 도둑질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은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핵심은 이렇다. 근엄한 척 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이면에는 여성의 성을 이용한 수많은 사업이 있다. 그중에서 무엇을 금지하고 무엇을 허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나눌 수 있는가? 성노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런 위선을 건드린다. “뭐 성은 소중한 거니까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어차피 너희들도 ‘여자를 팔아’ 먹고 살고 있잖아!” 이들은 성이 상품이 된 현실을 치사하게 부인하지 않으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 시장에 뛰어드는 것뿐이다.

 

한 가지 유의하자. 성상품화를 현실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우리는 교육이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교육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실을 가릴 수는 없다. 게다가 교육이 상품이 아니라면 교사도 노동자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똑같은 이야기를 의료나 문화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 당위적으로 교육이나 의료가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노동자가 아닌 건 아니다.

 

노동의 상품화 자체를 생각해보자. 오늘날 노동상품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자본주의 역사 초창기에는 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역시 아주 수치스러운 행위로 여겨져서 많은 농민들이 굶을지언정 일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남의 밑에서 명령에 따라 일하는 것이 ‘인격을 모독당하고’ ‘치욕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농민들을 ‘임금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굶주림 이외에도 떠도는 빈민을 잡아가두는 노동수용소 같은 국가의 장치도 필요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노동의 상품화 자체가 문제다. 어떤 노동이든(성노동 또한)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고 해방되어야 한다. 다만 그때까지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손을 잡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성노동자들 또한 그렇다.

 

나는 사실 이런 입장에 상당히 동의한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아무 문제도 없는가? 있다.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나는 위에서 교육과 의료, 문화 등과 같은 특수한 상품을 섹스를 비교했는데 사실은 똑같이 비교할 수가 없다. ‘교육(또는 의료)가 상품이 아니다’라는 맥락과 ‘성(섹스)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예컨대 교육은 개인의 발전에 필수적이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의료 또한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교육이나 의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기에 ‘상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도 그런가? 사람들이 서로 섹스서비스를 주고받는 일에서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하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섹스를 해야 하는가? 다음 질문으로 들어가자.(계속)


성매매를 생각하다. 물음 2. 인간은 섹스를 꼭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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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3/06/25 03: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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