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크레인 위에 있다- 자본과 인간의 삶

그녀가 크레인 위에 있다. 김진숙. 쉰둘의 여성노동자.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었으며 20년을 해고노동자로 살아온 그녀가 200일을 넘게 크레인 위에 있다. 뜨거운 폭염으로 크레인이 달궈질 때도 무시무시한 폭우가 쏟아질 때도 그녀는 크레인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곳은 그녀의 투쟁의 자리이며, 삶의 자리이고, 동지들이 숨을 거둔 죽음의 자리이다. 그리고 그곳은, 그녀가 서 있는 85호 크레인은, 과연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자리가 될 수 있을까? 한진중공업이 행한 400여 명의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 김진숙과 10여 명의 노동자들은 크레인에 버티고 서 있다. 노조 집행부는 이미 사측과 타협하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였음에도, 그녀는 아직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김주익과 김진숙, 8년의 시간과 똑같은 이유


현재 '희망 버스'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야기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크레인 농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 그녀가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에 8년 전 김주익이라는 또 다른 노동자가 지금과 똑같은 이유로 올라가 있었다. 600여 명의 정리해고와 노조 탄압에 반대하며 싸움을 이어가다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지금과는 달리 많이 알려지지 못한 그 투쟁은 이른바 운동권들 사이에서만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내려오지 못했다. 크레인 위에 올라간 지 129일째인 어느 새벽, 그는 크레인 운전석 안에서 스스로의 목을 맸다. 김주익. 한 사람의 노동자이자 한 가족의 가장은 그렇게 '열사'가 되었다. 나 역시 2003년 어느 때 '김주익 열사'를 추모하는 대자보를 학교에서 본 기억이 새록하다.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 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 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꺼야. 그럼 모두 안녕."



김주익은 아이들에게 '힐리스'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지막까지 못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리고 그 후에 아버지를 대신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준 사람이 있다. 어느 잘난 부자나 자선사업가, 정치인이 아닌, 그와 똑같은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이는 다른 동료들과 19만 3천 원을 모아 세 아이에거 인라인 스케이트를 선물했다. 그이가 바로 지금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이다. 부자도 정치인도 김주익을 외면하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외면했지만, 역시 잘날 것 없는 노동자인 그이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 후 그녀는 김주익과 똑같은 이유로 크레인 위에 올랐다. 그러나 "김주익 씨가 못해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하겠다"고 말하며 반드시 승리하여 살아내려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자본과 인간의 삶

8년 전 김주익이 죽은 것도(그리고 김주익이 죽은 지 15일 후에 곽재규라는 또 한 분의 노동자가 투신자살을 했다), 그리고 김진숙이 지금 크레인 위에 있는 것도 결정적인 이유는 동일하다. 정리해고. 그들의 싸움은 자신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폐기하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투쟁이다. 한진중공업이 1989년 영도 조선소를 인수한 이후 그곳의 노동자는 3200명에서 현재 670명으로 줄어들었다. 당연히 자연적 감소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는 수백 명을 한꺼번에 짜르는 정리해고가 있었고, 그에 대항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김주익과 곽재규는 그 투쟁에서 목숨을 버렸고, 김진숙은 200일 넘게 크레인 위에 버티고 있다.


한진중공업이 실행한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말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 내용은 이미 여러 곳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으므로 더 말할 필요도 없다(간단히 알고 싶다면 이곳을 참조). 그리고 사실 부당하든 부당하지 않든(혹은 근거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에서 모든 정리해고는 해고당하는 노동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사회적 악행이다. 재작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는 분명 회사가 망하게 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라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절절한 진실이다. 실제로 그때 이후 15명의 해고 노동자가 자살과 여타 이유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기업에, 또는 자본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으며, 자본으로부터 외면 혹은 버림받을 때는 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받는다.


그렇다, 이게 중요하다.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시스템의 핵심은 무엇보다 노동의 상품화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으며, 그것을 자본(기업)이 사줘야만 생계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기업)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기업가들이 자신 있게 주장하듯, 기업은 고용창출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며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 기업(자본) 활동이 활발할 때 그 사회의 절대적 풍요도 증가하며, 기업(자본) 활동이 부진하다면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다.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사람들의 생계는 자본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소수의 자본가이며, 더 크게 보자면 이른바 시장의 논리이다. 때문에 경기변동이나 해당 자본의 투자 방향 변화, 또는 한진중공업의 사례처럼 사업의 해외이전 같은 외부적 원인으로 인해 그 자본에 의탁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출렁인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그 노동자들이 사는 사회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자본에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바로 그 자본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그 결과는 무엇인가? 삶의 지독한 유동성, 불안정성, 인간관계의 피폐화와 소외, 인간의 도구화. 그렇게 해서 인간의 삶은 '악마의 맷돌'에 갈려버린다.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사적소유 사이의 모순'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자본, 노동자, 국가- 신성한 삼위일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와 이어진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금융 위기로 미국 금융 시장은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미국 정부는 수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여 위기를 불러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금융 회사들을 살려냈다. 미국 시민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금융시장 호황으로 인한 이익을 맘껏 향유하며 수백수천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으면서도, 시장의 부실을 예측하지 못하고 거품을 키워온 당사자들을 세금으로 구제한다? 게다가 그들은 금융 위기에도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겼다. 미국인들은 이런 도덕적 해이에 분노하며 구제금융을 실시한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 경제위기의 주범을 국가가 살려줘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런 항의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존재한다. 브레이크 없는 금융자유화를 추구하며 탐욕을 충족시켜온 금융자본에 위기에 대한 지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Too Big to Fail. 그들은 망하게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컸고 사회 전체에 너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을 망하게 되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금융시장이 붕괴될 게 뻔했고, 그 피해는 그융투기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그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까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파국은 막아야 했다.


비슷한 상황을 한국도 경험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의 직접적인 원인 고리 중 하나는 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며 끌어쓴 돈을 갚지 못하며 일어난 연쇄 부도 사태였다. 신용경색 상태에 이른 많은 기업들과 그들에게 무리한 대출을 해준 은행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고 그들을 망하게 한다는 건 한국 경제사회의 파국을 뜻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수조 원의 세금을 구제금융으로 지급한 정부, 그리고 그 세금을 내고 심지어 금모으기 운동까지 한 국민. 즉 전체 사회였다. 망할 기업은 망했지만 살아난 기업은 체질개선을 한 덕에 이후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단적으로 1997년 이전의 삼성, LG, 현대 등과 그 10년 후의 그들은 위상이 전혀 다르다. 한국 안에서만 놀던 그들은 지금은 세계 유수의 기업이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은 전체 사회에 분배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이상의 사례들은 마르크스의 지적을 확인해준다. 자본이 거대화, 고도화될수록 그것이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다. 즉, '자본의 사회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자본은 여전히 사적 소유물로서 그 자본을 소유한 개인(들)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다. 그 개인(들)의 판단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전체 사회가 떠안고 해결하지만, 반면에 자본이 거둔 이득이 전체 사회에 반드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른바 '피해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라는 구절은 이런 모순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런 모순으로 인해 경제는 격동하고 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생산수단)을 사회 전체가 소유하고 판단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 경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 같은 것이 아니라, 자본의 발달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비록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마르크스의 제안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철도나 도로, 전기, 수도 같은 특정 자본(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하며, 사적 자본도 일정 정도 통제하고 있다. 사실상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국가와 자본이 결합한 국가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을 관리해야 할 국가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자본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밖에 없다. 하이에크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 시스템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한 것에도 분명 진실이 담겨 있다. 자본의 활동이 전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려는 것이 그 시스템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GM의 회장은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 말의 진실성 여부에 어떻든, 당시의 여러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경제 시스템을 추구하려 했다. 국가의 주도 아래 자본과 노동의 이해 관계를 결합시키는 것이 그 시스템의 목적이었다.

세계화된 자본의 시대


고도로 발달하고 거대해진 자본은 사회 전체에,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소수의 손에서만 맡겨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자본의 사정으로 사업이 중지되고 수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명백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고 명백히 나와 있는바, 그런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까? 자본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공동 소유로 나간다고 해서 자본이 자동적으로 사회 전체의 복리를 위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사용을 민주주의적으로(혹은 공동체적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한계가 있는 한 인간(그리고 인간의 모임)이 결코 '사회 전체에 바람직한 방향'을 알 수 없으며, 자본의 사용을 '자유시장'이라는 기구에 맡기는 것이 유일하게 사회 전체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자동으로 결정되는 가격과 이윤이 사회를 저절로 이상적인 방향으로 굴러가게 한다는 것이다. 설령 시장의 작동이 문제를 일으키더라도(마르크스가 말한 사적 소유의 모순 같은), 그것은 지금 당장 어떻게 개선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자본의 적절한 사용 방법을 시장 이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맡겨라! 자본의 사적 소유와 그것의 자유로운 사용이 아무리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신자유주의는 말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실패의 길을 걸으면서 신자유주의 이론은 세계 각국 경제 정책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점차 줄어들고, 시장질서는 침해해서는 안 될 신성한 존재가 됐다. 여기에는 또 다른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면서, 특히 인터넷으로 인해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지면서, 자본의 이동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자본은 국가 단위를 훌쩍 넘었으며,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국가 간 이동도 (특히 금융 영역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결과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글로벌한 세계 시장이다.


다시, 인간의 삶과 자본으로


길게 돌아왔지만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자, 오늘날 글러벌한 세계 시장은 신자유주의의 약속처럼 최선의 결과를 내놓고 있을까? 불행히도, 그리고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의 사례에서 보듯, 자본의 자유로운 사용은 여전히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자본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은 해결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주장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크레인 위에 올라간 김진숙은 온몸으로 그 사실을 절절히 외치고 있다. 우리가 만약 여전히 인간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계속해서 자본의 '적절한' 사용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설령 우리가 아직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비록 우리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자본의 보편적 사용법은 알지 못하더라도, 단기적이거나 특수한 국면에서는 그 사용법을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시 상황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제 부흥 시기에는 계획경제가 시장경제가 내놓지 못하는 훌륭한 성과를 내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장하준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경제 선진국이 초기에 계획 경제 정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걸 잘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즉, 시장에 맡기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교조적인 주장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대안적인 경제 시스템의 상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소련이 채택한 일국 사회주의 경제는 체제 경쟁에서 처절히 패배하고, 오히려 민중들을 착취하면서 실패로 들어갔다. 더욱이 오늘날의 '글로벌한 세계' 시장은 각 국가들이 20세기 초중반에 택했던 국가 주도의 자본과 노동의 타협(북유럽의 복지 국가로 대표되는)이라는 해결책을 점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장기적으로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고 생산을 해외로 돌릴 계획이다. 지금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는 일감이 없어 정리해고를 하지만, 필리핀에 새로 지은 수빅 조선소에서는 과로사로 노동자가 죽어나갈 정도로 일감이 몰려 있다. 글로벌한 세계 시장에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 더 싼 노동력을 찾아나서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달리 말하면,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정리해고되고 김진숙 씨가 이에 저항하며 크레인 위에 올라간 것은 이 글로벌한 세계 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본의 운동으로 인간의 삶이 흔들거리는 일은 오늘날 국제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자본이 세계화되면서 국민국가는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민을 책임져온 국민국가는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본에 개입해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초국적 자본은 한 나라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은 왠만한 국가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은 국민의 전반적 삶을 책임지는 국민국가의 책무를 면제해주고 있다. 이제 각자의 삶은 각자가 꾸려가는 것이며, 국가는 단순히 질서의 관리자(테러나 범죄에 대응하는)일 뿐이라는 새로운 국가관이 출현했다. 그렇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문제처럼, 그리고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문제처럼, 자본의 국제적 운동은 사회 공동체에 점차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우고 있다. 글로벌한 세계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누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지는 아직까지 미궁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요구하며 김진숙은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


나로서는 비현실적인 두 가지 해결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는 세계화된 자본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적인 연합 내지 기구. 그러나 G20 회의에서도 보듯, 한 국가를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 체제에서는 각국의 이익을 최우선할 뿐 공동의 행동을 좀처럼 만들어내지 못한다. EU조차도 최근의 위기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길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 정부가 탄생하지 않는 한 이런 연합 내지 기구는 계속 삐걱거릴 것이다. 둘째는 자본의 국제적 운동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동, 사회운동의 발달. 전자가 '위'로부터의 대응이라면 후자는 '아래'로부터의 대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비해 노동은 턱없이 한 나라, 한 조합 안에 갇혀 있다. 노동운동의 국제적 조직화는 난망하기 이를 데 없으며, 현재로서는 거의 유토피아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세계화된 자본의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그 필요성은 더욱 대두될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크레인 위에 있다. 사회의, 세계의 답을 요구하며 그 위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노동자가 계속해 답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크레인 위에 올라갈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모를 수는 없다.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덧글

  • 춤추는콩알 2011/08/16 21:39 # 답글

    팔년전에도 희망버스질 했더라면 요즘 절망버스라고. 욕처먹지 않았을건데
    결국 쥐박이미워가 아니겠음?ㅋ
  • net진보 2011/08/16 21:44 #

    뭐 그때햇더라면 핵대중,노시계라고 했으려나요? 시람들이 김주환열사라는분도 민주정부때 돌아가셧죠...생각해보니...마산한진중공장장비를 영도로 옮기고 사실상 팔려고 매물내놓아서 마산한진중공장 정규직-비정규직 전환근로자가 사망햇을때 한진중노조와 민주노총은 무얼했나요?
  • 춤추는콩알 2011/08/16 21:50 #

    아따 그때는 셔틀 잘하고 있었지라 ㅋ
  • Mediocris 2011/08/17 00:26 # 답글

    노동 상품의 최종 구입자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를 포함한 소비자입니다. 소비자는 자본의 대리인인 경영자의 최종 고용인입니다. 그러므로 노동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 최종 주체는 자본이 아니라 소비자입니다. 김진숙은 자본만을 목표로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비자와 신규 구직자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김진숙의 고공 농성은 한진중공업 수주 고객의 선박 구입을 방해하고, 투자자 자본 이익을 봉쇄하며, 구직자의 신규 노동 진입 기회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김진숙의 고공 농성은 정규직 복직으로 얻는 이익이 극렬한 투쟁으로 인한 기회비용을 상회한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연봉이 수준 이하라면 극렬 투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 파파라치 2012/10/25 23:46 # 답글

    링크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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