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포격 단상들

분노에 찬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은 없었다.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우리는 마땅히 분노할 줄 알아야 하나 분노를 표출하는 올바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따라 수백만의 생명이 좌우된다.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을 비웃는 데 활용하는 사람들만큼 꼴볼견인 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그저 큰 목소리가 아니라 무엇이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어떤 방향도 모두 고려할 줄 아는 열린 마음.


북한의 포격이 그놈들이 단순히 그냥 미친 놈들이고 개새끼들이라서 그렇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국가의 행동은 자신들의 체제 유지와 상황 개선에 목표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북한의 이런 행동도 고도로 계산된 행위라는 가정 아래 사고를 해보자. 북한의 연평도 포격의 목적: 후계자 김정은 우상화의 일환이자 긴장 조성으로 내부 결속 강화,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과 남한 정부를 대화 테이블로 이끌려는 벼랑 끝 전술. 즉 궁극적으로 현 북한 정권의 체제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이런 짓을 하면 북한 체제가 더 존속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북한 체제가 존속할 수 있음을 보장한다.

1번의 위험성은 어차피 망하는 거 그냥 막나가자는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할 수 있다. 2번의 위험성은 그래 가지고는 북한이라는 막장 국가가 정상 국가로 변화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다. 이른바 요즘 말하는 '햇볕정책의 실패'라는 것이겠다.


가능성의 문제를 생각하자. 남한이나 미국이 실제적으로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보통의 민주국가 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교를 단절하고 무역을 중단하며 긴장 상태를 증가시키면서 상대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상대국의 현 정권이 지지를 잃고 야당으로 교체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외교적 압박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이미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정한 막장 국가로, 대다수의 세계와 단절 상태다. 게다가 북한은 김정일 '장군' 아래 똘똘 뭉쳐 있는 병영국가. 영토에 포격을 맞아 군인과 민간인이 다수 사망해도 정권이 흔들리기보단 더 뭉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어떻게 김정일을 '벌벌 떨게'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시도를 못하게 할 것인가?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다.



더 많은 군사력이 더 많은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가 부족해서 9.11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여론을 틈타 이뤄지고 있는 국방예산 증액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는 이미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세계 12위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갖추어도 테러 수준에 가까운 북한의 도발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친 개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말. 그러나 미친 개가 매를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들어 물어뜯을 위험도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그 출혈을 감당할 수 있는가.


과연 북한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지녔다고 하는 보수 정권 시절에는 북한의 도발이 없었는가. 기억나는 큼직한 사건을 생각해보자. 김신조 침투 사건(1968, 박정희), 육영수 여사 피살(1974, 박정희), 판문점 도끼 만행(1976, 박정희), 버마 아웅산 묘역 테러(1983, 전두환), KAL기 폭파(1987, 노태우), 연평해전(2002, 김대중), 천안함(2010, 이명박), 연평도(2010, 이명박).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들만 추려보았다. 그러면 그 시절에는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는 없었는가. 김신조가 박정희 목을 따러 침투한 지 4년 후에 박정희 대통령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전두환을 노린 아웅산 묘역 테러로 정부 관계자 수십 명이 사망하고 2년 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시작된다. KAL기 폭파 사건이 있고 1년 뒤 노태우는 남북의 교류 협력과 평화통일의 원칙을 천명하는 7.7 선언을 발표하고 이어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한다. 요약: 북한의 도발은 계속 있어왔으며, 그때마다 한반도에는 긴장과 불안이 감돌았지만,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다. 불안한 상황일수록 평화를 위한 갈망도 크다. 어느 정권도 강경책 일변도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근본적 판단. a) 북한은 변화할 수 없는 존재이며, 유일한 길은 없애는 것뿐이다. b) 북한은 공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a라고 판단한다면, 그리고 그 판단이 옳다면 남한의 정책은 대북 재제든 압박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멸망으로 치닫게 하는 게 맞다(전면전이든 내부붕괴든). 이는 요즘 예로 많이 나오는 2차 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 대한 태도가 되겠다. 그렇지 않고 b라면, 강경책을 쓸 땐 쓰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b가 맞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a가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대비와 준비가 필요하다. 전면전의 피해를 감수할 수 없는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a)쪽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내부 붕괴뿐이다(물론 그를 위한 공작은 할 수 있겠지만).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당국자들의 태도는 확실히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김정은으로 권력 승계가 무난히 이어진다면 그 다음의 계획은 무엇인가? 중국의 지원으로 괴뢰 정권처럼 명맥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의 내전 발생 가능성과 그랬을 때의 대응은? 북한 정권이 정말로 붕괴했을 때 휴전선 이북이 한국의 영토로 편입될 수 있는가? 중국이 미국의 최고 동맹국인 한국이 압록강까지 올라오도록 허용할 것인가. 그런 약속이-북한 붕괴시 남한이 그 영토를 차지한다는 약속-중국과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붕괴를 희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순진한 발상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인데.


b)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핵 포기, 상호 군축, 교류 확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민주적 질서로 움직이는 사회로 변화. 사실, 이게 더 힘들어 보이긴 하다.


중국이 점차 동북아의 판세에 핵심 키가 되고 있다. 북한이 깽판을 쳐도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그나마 중국뿐이다. 다른 국가들은 이미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썼다. 남은 건 폭격 같은 위험한 카드뿐. 중국을 통하지 않고서 북한에 영향를 주기가 어려워졌다. 별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닌 듯. 근데 남한은 중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통일의 전망. 통일은 가능할까? 평화통일이든, 흡수통일이든, 헌법에 규정된 대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은 그것을 원할까. 미국: 세계의 경찰인 미국은 세계의 적을 원한다. 이란, 알카에다, 북한 등등. 그로써 미국은 군사력을 행사할 명분을 얻는다. 북한이 지나치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핵개발처럼)은 북한의 존재는 미국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관리할 수 있는 긴장'은 제국의 운영에 필수적이다. 일본: 북한이 호전적으로 나올수록 일본은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대를 보유할 명분을 얻게 된다. 일본의 우파들은 북한이 좀더 긴장을 조성해주기를 간절히 희망할 것이다. 중국: 남북이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황해 앞바다를 미해군이 항시 드나들 수가 있다. 중국으로서는 끔찍한 상황. 현 상황의 유지가 중국으로서는 최상이다. 러시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정도?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남한의 지배층도, 북한의 지배층도 '무한한 현상유지'를 희망하는 것 같다.

   


치킨 레이스는 병신 같은 짓이다.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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