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 해피엔딩 그 이후

 


그리고 허각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한국 케이블티비 사상 유래 없는 인기를 끈 슈퍼스타K2는 많은 이슈와 후폭풍을 남기고 끝났다. 시청자들은 베스트 11부터 자신이 응원하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던지고 열과 성을 다해 홍보하면서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스컴과 네티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결과 하나 하나에 열광하며 기사를 내고, 글을 쓰고, 퍼 나르면 사회적 파급력을 증폭시켰다. 오죽 했으면 슈퍼스타K2를 단 한 번도 시청한 적 없는 나도 허각, 존박, 장재인, 강승윤, 김지수, 김그림, 이런 후보자들의 이름을 훤히 알게 될 정도였다. 슈퍼스타K2는 대성공을 했다.


나는 한 번도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다. 다만 형이 열심히 챙겨봐서 나는 컴퓨터(와우)를 하는 중에 들은 적은 있다. 한번은 후보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는데, 한 사람이 유독 목소리가 탁 트이고 노래를 잘 불러서 "목소리 좋네"라고 말하자 형이 "쟤가 바로 허각이야. 노래 제일 잘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허각이 우승을 했다. 허각의 우승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했다. 극적이었으되 통속극이었다. 중졸의, 가난하며, 키 작고, 볼품없는, 허각이 빼어난 노래 실력만으로 다른 모든 이들을 제치고 우승하는 장면은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이다. 어떤 이들은 '이변'이라고 말하지만, 그럴리가, 마지막 방송에서 존박이 우승하는 것은 감동도 없고 화제도 안 되는 시쳇말로 각이 안 나오는 시나리오였다. 우리는 TV에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보기를 희망한다. 약자가 승리하는 장면을, 내세울 것 없는 자가 성공하는 장면을, 열심히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은 이가 세상의 모든 편견과 장애를 뚫고 부수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각을 응원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음악을 향한 열정을 키워오던 사내는 그날 주인공이,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펼쳐진 '이야기'에 감동했다. 게다가 바로 자신(시청자)들이 이런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완벽한 동화라면 슈터스타K는 이렇게 끝날 것이다. 그 후로도 허각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라고


해피엔딩, 그후
그러나 해피엔딩 이후로도 삶은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진정한 삶은 해피엔딩 이후에 시작된다.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왕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슈퍼스타K2의 우승자 허각 역시도(그리고 다른 주요 후보자들도) 가수로서의 인생은 프로그램 종료 이후부터이다. 그런데 정말로 허각은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을까? 대중들은 '슈퍼스타K'에서 그랬듯 이후로도 그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고 그의 노래를 사랑해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허각은 노래를 잘한다. 그렇지만 한국 가요계에는 그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많으며, 그 노래를 잘 한다 하는 사람들도 대중으로부터는 외면받기 일쑤다. 이미 한국 가요계는 음악성, 가창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이승철이 요즘 같은 시대였다면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윤종신은 요즘 아이들은 개그맨으로만 알 것이다. 누구든지 TV 예능 프로에 나와 웃기거나 울리고, 개인기와 애드립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활발한 연예 활동으로 뉴스거리를 생각해서 항상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남 다른 자신만의 매력으로 팬층을 형성해야 한다. 이제는 그래야만 장사가 된다. 노래+다른 매력이 있어야만 대중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노래를 구매한다. '아티스트'가 아닌 '스타'의 길을 걷는 이상,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의 가요계는 동화 속 판타지가 아니며 냉혹한 시장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분명 착한 이들이 성공하는 세상을,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원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감동적인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성공하는 장면을 통해 그런 감동을 만끽한다. 그러나 동화에는, 그리고 슈퍼스타K에는, 주인공이 있지만, 현실에는 어떤 주인공도 없다. 중졸의, 가난하며, 키 작고, 볼품없는 사내가 빼어난 실력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어 하며 그렇기에 허각은 슈퍼스타K라는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구구절절한 허각의 배경과 사연은 사람들이 실제 가수들에게 원하는 것들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수들에게서 음악, 춤, 외모 등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를 원한다. 그런데 허각은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노래실력? 미안한 얘기지만 그의 노래실력이 뛰어나긴 해도 한국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며, 심하게 얘기하면 그 정도 실력은 쌔고 샜다. '기구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라는 이미지 다음에 그에게는 어떤 상품성이 남을까? 사람들이 허각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에 질렸을 때 그에게 다른 상품성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는 잔혹하게 잊혀질 것이다. 그것이 허각이 해피엔딩 이후에 진입한 세계이다.




스토리텔링의 시대 
나는 사람들이 허각의 노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허각의 '이야기'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노래는 이야기의 핵심 요소이긴 했지만, 허각이 그런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정의 평범한 청년이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슈퍼스타K의 제작진들은 허각(그리고 다른 출연자들)의 사연을 멋지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슈퍼스타K는 단순히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며, 그 프로그램의 성공은 출연자들의 뛰어난 재능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슈퍼스타K의 성공은 출연자들 각자의 사연들을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해 시청자들의 공감과 참여를 얻어낸 스토리텔링에 있었다. 내 생각에 슈퍼스타K는 서로의 음악 실력을 겨루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겨루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최고로 뛰어난 가수를 뽑는 리얼리티 쇼가 아니라 최고로 감동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리얼리티 드라마였다. 


언젠가서부터 사건, 또는 인물 자체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그를 둘러싼 내러티브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예컨대 누가 금메달을 땄다. 이는 별것 없는 뉴스이다. 그런데 이 선수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나 효도하려고 열심히 운동을 한 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만의 내러티브는 그를 돋보이게 하는 아우라를 형성해준다. 이를 제대로 활용한 것 중 하나가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이다. '무릎팍 도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감동적인 드라마로 포장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다. 출연자들은 자신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을 언급하고, 적절한 수준의 치부와 약점을 드러내고, 자신이 어떤 대단한 것들을 이루어냈는지를 자랑한다. 궁극적으로 '무릎팍 도사'에서 전달하는 것은 출연자가 주인공인 인생극장이다. 출연자는 '인생에서 이러이러한 고난과 문제를 겪었지만, 결국 성공한 멋진 인물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잘 전달되었을 때 사람들은 출연자의 인생에 감동하며 그를 더욱 선망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너무 빤한 스토리에 식상해져서 약발이 안 먹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것, 즉 스토리텔링은 오늘날 마케팅에서의 핵심 기법이다.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과 브랜드에 얽힌 이야기를 창조하고 전달한다. 이를테면 마릴린 먼로가 입고 잤다는 샤넬 넘버 5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또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라는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지었단 말보로MARLBORO 담배 이야기 같은 것도 있다(물론 이건 완전 허구). 이렇게 제품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이 그 로맨틱한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으로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서의 제품을 구매하는 셈이다. 기술평준화로 제품들 간의 질적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상황에서 제품에 독특한 아우라와 의미를 부여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의 활용은 마케팅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운동에서 정의로운 변호사이자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들려줌으로써 386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CEO의 이야기를 형상화하여 경제적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성공 스토리를 장대한 신화로 만들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출세를 입지전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근래 쏟아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양산하면서, 그들을 더욱 친근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여겨지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단순한, 조각 조각난 이미지와 정보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맥락과 사연이 있는 이미지에, 줄거리를 가지고 배치된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인간의 뇌는 1차적으로 이야기를 기반으로 기억을 하며, 어떤 사건에서도 연유와 행위자를 찾아내려는 성향을 지녔다-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도 말이다. 기술 발전으로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고 있는 현대에서는 더더욱 그 정보들을 엮어내는 내러티브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만들어 정신을 포맷하는 장치』의 저자인 크리스티앙 살몽의 말처럼 이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감성을 유혹하고 설득해 정말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제인 스토리텔링시대"이다.



이야기가 너무 커질 것 같으니 이만 정리를 해보자. 우리들은 세계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인식하며, 그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기에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안할수록 더 안정적이고 익숙한 내러티브에 이끌리며, 불안하고 불완전한 '현실'보다 안락하고 완성된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느끼기에 슈퍼스타K는 리얼한 현실이 아니라 리얼을 가장한 가상-현실이었으며, 그것은 커다란 영광을 향한 경쟁과 가장 비천한 자의 승리라는 고전적인 내러티브를 재연해냈다. 슈퍼스타K의 성공을 분석한 여러 시선들이 있지만, 대중들의 이런 내러티브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키고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극대화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슈퍼스타K는 현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스토리텔링의 득세에 뭐라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다만 한 가지, 어떤 가수의 노래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더 인기를 끌며, 어떤 배우의 연기보다 그가 생산해내는 화제거리가 더 주목을 받는 일은 어딘지 찜찜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물이지만,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필요하며, 좋은 문학과 영화의 조건이 그렇듯 내러티브는 현실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인기를 끄는 내러티브들은 대다수가 달달하고,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며, 아름답다. 적당한 수준의 현실고발과 더불어 적당한 봉합이 이어지며, 종국적으로 '우리'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슈퍼스타K가 그랬듯, 다수가 안정적이고 익숙한 내러티브를 차용하여 일종의 동화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현실의 내밀한 속살을 파헤치지 않으며,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창조해낸다.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느냐는 어떤 세계관으로 살아가느냐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안전하고 안락한 과거회귀적인 내러티브에 머무는 것이 나는 썩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리에게는 참신하고 현실지향적인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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