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그후 40년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길거리에 몇 명의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평화시장에 즐비한 봉재공장, 의류공장의 노동자인 그들은 근로기준법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며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출동해 시위를 막고 플랜카드를 빼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 중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위해 준비해둔 석유를 몸에 끼얹고 불을 붙였다. 모두가 충격에 빠져 넋이 나가 있을 때 그는 평화시장 앞을 달리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는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나이 23살 평화시장의 재봉 노동자 전태일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전태일 평전>

 

 

전태일의 죽음은 당시의 학생들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서울대생들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며 추도식을 거행했고, 다른 대학들도 이어서 집회를 열었다. 기독교 교회는 추모 예배를 거행하며 사회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의 분신 이후 다른 노동자들의 분신 시도와 파업도 잇따라, 1971년의 노동분규는 1970년의 열 배에 달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은 '전태일 정신의 구현'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전태일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제껏 언론과 지식인들이 눈 감고 있던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과 노동자 탄압 문제가 정면으로 던져졌으며, 그것은 더 이상 참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제로 되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산업화에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결성하며 노동운동에 나섰고, 학생운동권 역시 본격적으로 노동문제를 주시하고 위장취업 등의 수단으로 적극 결합하게 된다.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상징은 한국의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중운동에 크나큰 자양분이 되었다. 70~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을 운동권으로 만든 것은 마르크스-레닌의 사상이 아니라, '대학생 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다'는 전태일의 소원과 그가 보여준 억압받는 민중들을 향한 애정이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貧富)의 법칙입니까?

- 전태일의 1970년 초의 초고

 

전태일은 1948년 대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1954년 서울로 올라와 구두딲기, 신문팔이에, 더운 날에는 아이스케키 장사, 비오는 날에는 우산 장사를 하며 거리에서 살았다. 1965년 평화시장의 옷 공장에 취직해 정식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은 끔찍했다. 열세 살, 열네 살 먹은 소녀들이 창문 하나 없는 먼지투성이의 작업장에서 피를 토하며 하루 14시간씩을 일했고 때로는 공장 주인이 주는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사나흘씩 밤샘을 했다. 그런 여공들은 약의 후유증으로 바보가 되고, 폐병에 걸려 일터에서 쫓겨났다. 전태일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나 집 나올 때 차비 30원을 주잖아요. 시다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낮이면 꾸벅꾸벅 졸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까지 쫄쫄 굶기에 보다 못해 그 돈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여섯 사람한테 나눠주었더니 1시간 반쯤은 견디고 일해요.”

 

그러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라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도 안 나온 그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라는 걸 알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한자가 많은 법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일기에 '대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법을 공부했고, 그것을 동료 노동자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근로조건도 지키지 않는 현실에 분개하며 동지들을 모아 시정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인다.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12시간으로.

1개월 특(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희망을 얻었겠지만, 그 희망이 덧없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지키려는 기업주는 아무도 없었다. 정부 역시 경제발전에만 몰두했을 뿐 노동자의 인권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노조 결성 시도는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번번이 실패했고, 노동운동도 방해받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실상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1970년 11월 13일 그는 자신을 불태웠다. 빨리 불이 붙도록 옷소매에는 스폰지를 껴놓고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우리가 하려던 일, 내가 죽고 나서라도 꼭 이루어주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네. 쉽다면 누군들 안 하겠나. 어려울 때 어려운 일 하는 것이 진짜

사람일세. 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평전>, 전태일의 유언

 

 

올해가 그가 죽은 지 40주기이다. 전태일은 그 이후 모든 진보운동가들에게 하나의 시작점이자 커다란 부채가 되었다. 다시는 전태일 같은 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이 한국 운동을 끌고 밀어온 강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불행히도 수많은 열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1년 365일 중 열사가 죽지 않은 날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그런 희생들을 치르며 한국 노동운동은 성장해왔고, 박정희 정권을 흔든 YH 노조 파업과 이후 한국 사회의 커다란 전기가 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어냈다. 물론 아직까지도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며, 노동문제에서는 여전히 후진적이지만, 오늘날 분명 더 이상은 전태일이 분노한 정도의 참혹한 노동현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태일이 하려던 일은 이제 다 이루어진 걸까?

 

2000년 이후로도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한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와 목을 매단 현진중공업의 김주익 열사, 해고된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목숨을 끓은 대한통운의 박종태 열사... 아마 많은 이들이 이들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이제는 노동자들의 이러한 죽음이 별다른 충격도 각성도 던져주지 않는다. 다들 서로가 각자의 삶을 신경 쓰기 바쁘고 그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라고 치부된다. 너무 많은 죽음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 것일까? 누구 말마따나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사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일까? 죽음의 숭고함과 비장함보다는 축제의 발랄함과 유쾌함이 선호되는 시대에 전태일은 더 이상은 노동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아니 진보운동은 이후 어디에서 새로운 자양분과 활력을 얻어야 할까?



악화되고 있는 노동환경과 약화되고 있는 노동운동을 보며 나는 전태일을 생각한다. 그가 가엾이 여긴 ‘시다’들은 이제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동희오토 노동자들과 구미 KEC 노동자들과, 재능학습지노동자들과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학교조리종사원 노동자들과 쓰레기수거 노동자들과 대학 시간강사들과 각종 알바 인생들을 생각한다. 전태일이,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람들이 “힘에 겨워 힘에 겨워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는 아직도 남아 있다.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을 5만 명 모집하고 있다. 재정 사정이 많이 어렵다나 보다. http://chuntaeil.org/40/ 생각 있으신 분은 같이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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