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3일
김제동 씨,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정치'에요.
더럽혀진 정치
며칠 전 김제동 씨가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출연료와 오랜 출연 기간에 따른 개편이라고 합니다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제동 씨가 현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에 윗선에 의해 짤렸다는 짐작이 파다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사회나 쌍용자동차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한 참여와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는 거지요. 사실이라면 정말 더럽고 치사한 일입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니까요. 하기야 이 정부에 원칙을 말하는 것이 입 아픈 일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저한테 더 흥미로운 것은 김제동 씨 소속사의 반응이었어요. 소속사인 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가 다음 아고라에 글을 남겼습니다(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090707).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글이더군요. 그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이 특정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옹호하고 전 국민적 관심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의견을 표명하거나 그가 가진 연예인으로써의 능력을 발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행위를 정치적인 시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이들은 ‘폴리테이너’ 가 아니라 ‘소셜테이너’ 들입니다."
말하자면 김제동 씨는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전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치'와 '사회에 적극 참여'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 국민적 관심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의견을 표명"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행위"는 과연 '정치'와 어떻게 다른 걸까?
물론 김영준 대표가 의미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영준 대표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고, 구체적인 이념(사회주의라든지, 사민주의라든지, 자유주의라든지)을 표방하는 것을 '정치'로 규정하고 전 국민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활동을 하는 행위를 정치와 구분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마 정치에 대한 이런 관점이 사회 일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작년 촛불 시위에서도 시위라는 정치적인 행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난 정치적이진 않지만....' 혹은 '난 정치는 잘 모르지만...'이라고 운을 띄우며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 하면 정권을 잡기 위한 권력 투쟁이나 國K-1들의 집단 몸 싸움, 심하게는 부패와 비리, 뇌물, 거짓말 등을 연상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을 거북스러워하고 싫어하는 듯합니다. 이런 경향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이게 갈수록 더 심해져서 요즘에는 선거에 출마하는 명실공히 분명한 '정치인'들마저 비정치적 이미지를 많이 내세우더라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실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인' 이미지가 아니가 'CEO'의 이미지로 대선을 치르고 승리하면서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선거에서 주요 후보군으로 예전부터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해온 사람들이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사회 인사가 꼽히고는 하고 있습니다. 작년 대선 때 바람을 일으킬락 말락 하다 주저 앉은 문국현 씨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정운찬 씨(아차, 이제 총리죠)가 대표적이죠. 그 밖에도 신선하고 '비정치적'인 외부 인사(기업가, 연예인, 학자 등등)를 수혈해와서 선거를 치르는 모습은 여러 정당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이런 신선한 '비'정치인사들도 식상한 정치인이 되어 똑같은 일이 반복되곤 하죠. '정치'라는 단어는 심각하게 더럽혀져 있어서 이에 몸 담는 사람까지 더럽히고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오해
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정치'라는 행위의 범주를 정당 간의 정쟁이나 권력 투쟁, 기껏해야 투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당들 간의 경쟁이 보통 사람들과의 일상과 크게 괴리되어 있기에(혹은 괴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보통 사람들은 정치를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투표는 열성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기보다 고작 순수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나 자기 동향 사람, 자기 동문을 밀어주는 사적인 행위, 혹은 잘생기고 멋진, '이미지'가 좋은 사람을 뽑는 행위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치의 정의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저자 얼 쇼리스가 소개한 페리클레스의 것입니다. 그는 책에서 말합니다. "제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는 단지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정치'를 '가족에서부터 이웃, 더 나아가 모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저는 '정치'를 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문제에 대하여 다른 사람과 의견과 행동을 공유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가 속한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정치는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그런 점에서 김제동 씨의 활동이 충분히 정치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소신을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고 공감을 구하는 행위는 더 할 나위 없이 정치적인 일입니다.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행위입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닌, '너'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정치는 이루어집니다. 크게는 국가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우리 학교나 우리 동네, 또는 동아리나 클럽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규모가 어찌 되었든 자기 자신만의 독단을 넘어 함께 행동하고, 함께 생각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누군가는 "그러면 대체 정치가 아닌 건 뭐냐?"라는 의문을 품을 테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은 정치다"라고 말해왔습니다. 우리는 '정치'를 나랏님들끼리의 자리 싸움이나 투표 행위를 넘어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잘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스스로도 정치를 더 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직후에 언론사 등에서 유권자들에게 새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물어보면 많이들 '정치를 잘해주었으면'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좀 찜찜한데 첫째는 '이제 나는 투표로 의무를 다했으니 나머지는 뽑힌 니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이고, 둘째는 '정치를 잘해달라'라는 말이 '나라를 잘 다스려달라'라는 봉건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서입니다. 어느 쪽이나 정치와 '나'를 분리하는 듯한 의미라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정치를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설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폭력으로, 다수의 횡포로, 혹은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듣고 설득하고 합의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올 초 비극적인 용산 참사에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폭력이 아니라 철거민들과의 협상과 타협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피해 유가족들과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하건만 정부는 모로쇠로 일관하고 있지요.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직업적인 정치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연애에서처럼- 듣는 기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수용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위정자들은 지독히도 들을 줄 모르고 말할 줄만 압니다. 반대 의견은 모두 '오해'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열심히 홍보(또는 세뇌?)하는 데 급급하죠. 물론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너무 잘 나신 분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권력을 잡으신 분들은 대체로 가는 귀가 먹고 행동력만 증가하더군요. 그런데 과연 일상의 우리들은 얼마나 '정치'를 잘하고 있을까요?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부모,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교사, 부하직원의 의견을 듣지 않는 상사, 후배에게 강압적인 선배, 우리도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며 '꼰대짓'을 하진 않았을까요? 그런 것 말고도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무엇을 자발적으로 해본 경험은 얼마나 될까요? 한 집단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의견을 조율해본 경험은 얼마나 될까요? 무엇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논쟁해본 적은 얼마나 될까요? 어떤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념' 논쟁이 문제고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이념 논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것, 좌파다 우파다 갈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다른 의견과 사상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논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김제동 씨의 말을 가지고도 좌파다 빨갱이다 하고 마냥 미워하고 입을 막아버리려고 하는 거죠.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싫어하는 유아적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의견을 들을 줄 아는 성숙한 태도를 갖추려면, 우리는 더 많은 논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말하듯이 정치적인 시민은 논쟁하면서 큽니다. 그렇게 다른 의견과 부딪히고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책임과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올랐을 때도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입을 닫게 해버릴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꼭 불도저같이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사장 노릇하다 대통령이 된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더 많은 정치 수업이 필요합니다.
더 정치적인 사회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자본과 정권의 탄압을 알게 되고 조직력과 정치적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슷하게 전 자치 활동이 정치적 시민의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하는 관료적 조직이 아니라 스스로 규칙과 질서를 유지해가고 다른 사람과 함께 활동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감각-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판단하고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울 수 있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작은' 정치에 숙달되면 '큰' 정치를 생각하는 틀도 발전하고 성숙해질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고 생각도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세상'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정치'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정의를 약간 변형해서 말해보자면, 정치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활동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당연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쉽게는 차별이라고, 또 더 진지하게는 '파쇼'라고 부릅니다. 불행히도 광복 후 수십 년간의 한국 역사에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왔습니다. 더욱 불행하게도 현재의 정부도 그렇습니다.
전 좌우로 갈리는 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좌우로 갈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념과 사상이 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의식하고 있든 못 하고 있든 자기 나름의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는 너무도 지나치게 자신의 (사회에 대한) 생각을 감추고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이른바 '공인'이라고 불리는 스타들의 사회적 발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죠. 아마도 이런 경향 역시 자유로운 사상의 표출을 가로막았던 독재 시절의 유산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다른 의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대립되는 생각이 부딪혔을 때는 성숙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상대를 깔아뭉게고 대처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전 김제동 씨나 다른 '공인'들이 이런 '금기'에 도전해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행위를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더 나아가 지지 정당을 밝히는 것도(방송에서 말고 개인적으로라면) 무슨 상관이겠습니다. 설령 나와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사회는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는 더 많은 정치적 '커밍아웃'이 필요합니다. 저는 더 정치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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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23 15:59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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