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만화들] <총몽>은 자신의 업을 극복할 수 있을까? 즐거운 인생

키시로 유키토의 출세작 <총몽>은 '한 번은' 완결된 작품입니다. 들리는 이야기대로 라면, 작가가 <총몽>의 연재 후반부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급히 완결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완결후 10년여 후에 키시로 유키토는 오리지널 <총몽>의 후반부에서부터 스토리가 이어지는 <총몽 Last Order>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원래의 <총몽>의 엔딩은 흑역사가 되는 것이고, <총몽 LO>가 정식 스토리 라인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맞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저를 포함해 어떤 팬들도 <총몽>이 다시 연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10년여의 세월 탓인지 <총몽>과 <총몽 LO>는 분명 캐릭터와 스토리는 물론 세계관과 주제의식까지 같지만, 하나로 합치기엔 어딘지 껄끄러운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사정상 급히 완결을 낸 원래의 <총몽>만으로 이 만화는 명작의 반열에 들기에 충분하며, 특히 저는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에 봐서인지는 몰라도 이 원래의 <총몽>이 제 인생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냥 <총몽>만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녹슨 천사의 디스토피아

(이 '녹슨 천사'에 아직 반해 있다)


<총몽>의 시작은 매우 강렬합니다. 고철마을의 의사 이드가 쓰레기더미에서 갈리를 찾아내면서 만화는 시작합니다. 부서진 기계 몸에 머리만 남아 있는 갈리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 '녹슨 천사'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 장면은 파괴, 더러움, 혼돈, 극도의 무질서와 부조리 속에 파묻힌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구도는 곧장 작품의 배경인 고철마을 전체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자렘에서 버리는 쓰레기로 연명하는 고철마을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를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상층'의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살아가는 세상, 도덕도 윤리도 없이 힘과 폭력이 지배하며,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허물어져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미래 세계가 <총몽>의 배경입니다. 전형적인 사이버펑크물이지요.

무질서의 더럽고 음울한 고철마을에서 유일한 질서는 자렘뿐입니다. 온갖 폭력과 파괴가 판치는 고철마을이지만 자렘은 절대적으로 군림하면서 문자 그대로 고철마을 위에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고철마을의 무질서는 자렘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고 할까요. 작품 초반 갈리에게 매우 큰 영향을 준 유고의 죽음 역시 자렘의 질서에 도전한 결과입니다. 이 절대적인 상하 관계가 <총몽>의 주요한 축이며, 작품에 음울함을 더하는 중요한 입니다.

갈리는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에서 싸움을 시작합니다. 갈리에게 싸움은 과거와의 유일한 연결끈이죠. 갈리는 자신의 이름을 비롯한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기갑술'이라는 싸움의 기술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갈리는 싸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의'와 '자아'를 찾아갑니다.

여기에 갈리가 인간의 뇌에 기계몸이 달린 사이보그라는 사실이 갈리의 싸움에 좀더 무게를 더합니다. 기계 몸을 가진 사이보그에게 '생명'이란 무슨 의미일까?  사실 이제 보면 진부한 물음이긴 하지만(그리고 SF 장르에서는 흔한 주제이지만) 소년만화라는 틀에서는 색다르고 나름 진지하게 다가옵니다. 싸움은 갈리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행위이며, (기계 몸이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갈리는 작품 내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기도 하면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지만 결코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왜? 살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 왜 살아 있는지를 물으면서 갈리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 자신의 자유를 찾아 싸웁니다.



다마스커스 칼, 혹은 아웃사이더


<총몽>에서 가장 인상적인 비유 중 하나는 다마스커스 칼입니다. 갈리의 주무기인 다마스커스 칼은 일정량의 '불순물'이 섞인 철로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더욱 단단합니다.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강하다'라는 부분은 <총몽>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메시지이며, 과학적으로도 맞습니다. 다마스커스 강은 실제로 강도가 높았던 것으로 유명했던 고대의 철의 이름이며 여기에는 니켈이나 크롬 등의 자연적으로 첨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철을 제조할 때는 순수한 철(Fe)로만 만들지 않고 일정량의 다른 성분을 첨가합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도 유전자의 순수성은 멸종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동일한 유전자끼리의 결합은 치명적인 열성 형질을 발현시킬 확률을 높입니다. 과거에 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한 왕가들에서 치명적인 유전병이 나타나고 자질이 모자란 왕들이 나타난 것은 당연한 결과이죠. 생물학적으로는 단연 '잡종'이 바람직합니다(레바논이나 베네수엘라에서 미녀가 많은 것도 이들 국가들에는 혼혈이 많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아무튼 이 다마스커스 칼은 갈리의 무기이자 상징입니다. 만화 중간에 누군가가 말하듯 갈리는 천성적인 아웃사이더이죠. 주변과 완전히 화합하지 못하는 체제의 불순분자이며 나쁘게 말하면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갈리의 행동은 항상 주어진 세계의 질서와 예측을 벗어납니다. 노바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LO에서 카멜라 생귀스가 갈리에게 '파타 모르가나'를 맡길 때 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개체는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이 없습니다. 사회에서도 역시 큰 변혁을 가져오는 것은 체제에 불순응하는 자들입니다. 


작품은 다르지만 <세븐시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죠. 너무 뛰어난 인재들은 적응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프로그램 입안자들은 부적응자들만을 모아놓은 여름B팀을 보험으로 남겨둡니다. 맥락은 여기서도 비슷합니다. 세상은 학교 시험이 아니라서 정답이 없습니다. 또 때로는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행동보다 예측불허의 행동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갈리의 강함은 그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 현실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불순함'에 있습니다. 마치 결코 부러지지 않는 한 자루의 다마스커스 칼처럼.


업을 넘어서, 자유를 향한 투쟁

<총몽>에서 핵심적인 주제 하나는 '업'(혹은 '카르마')입니다. 불교 용어인 업은 기본적으로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입니다. 간단하게는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결과를 얻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를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좀더 들어가자면 '업'은 강력한 결정론적 세계관을 구성합니다. 현재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과거의 업의 결과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 과거는 또 그 과거의 결과.... 이런 연쇄는 무한히 이어집니다.  우주의 모든 운동은 예측가능하며, 인간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네가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너의 뇌 세포가 전기적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야....' 우리가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도 실상은 뇌의 전기화학 반응의 결과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반응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뇌를 모두 분석해서 행동 양식을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서 유래하는지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논쟁의 대상입니다.

(디스티 노바는 정말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덕도 이성도 모두 날려버리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광인. 그러나 그도 자유를 향한 답을 찾아 헤메는 방랑자다.)


최악의 매드사이언티스인 디스티 노바의 발언은 그렇기 때문에 전율스럽습니다. "과연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업'을 극복할 수 있는가? '업'을 정복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어!" 노바 교수는 끔찍한 악역이지만 여느 등장인물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내뿜습니다. 그건 그가 항상 인간의 한계를, 주어진 인과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난 그런 이세상 전부를 증오해! 열역학 제2법칙을 증오해!" 처음 읽을 당시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압도당했지만 이제는 노바 교수의 증오와 절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비가역성을 절대적 법칙으로 천명합니다. 뜨거운 물은 식지만 차가운 물은 덥혀지지 않듯, 우주의 모든 것은 차츰 식어져갈 뿐입니다. 어떤 그 무엇도 이 흐름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결정된 우주를 노바 교수가 증오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과거의 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진행될 뿐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저는 이것이 <총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절대적인 지배층으로 나오는 자렘은 사실 모든 욕망과 충동이 제거된 무미건조한 사회입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진행되며 틀에 맞춘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완벽히 합리적인 사회에는 자유란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무질서와 폭력으로 가득 찬 고철마을이 훨씬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작중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모두 정해진 질서에 도전하고 주어진 법칙과 싸웁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까지 자렘으로 가려 했던 유고,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분노로 자렘의 지배를 부수려했던 덴, '천의 얼굴을 가진 광기'로 극한을 넘어 자유를 추구했던 디스티 노바, 영원한 아웃사이더 갈리까지 입장도 성격도 다른 이들이지만 모두 자신들의 속박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의 주인공들입니다. 저는 이런 강렬한 캐릭터들이 LO에는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덴의 이 장면은 그야말로 간지폭퐁!! 자렘을 떨어뜨리려는 그의 시도는 무모했고, 허무하게도 아무 소용 없었지만 그의 의지는 감명적이었다)


작가 키시로 유키토는 뚜렷히 표현은 하지 않지만, 바로 그렇게 싸워나가는 과정이 자유를 향하는 길이라고, '생명'의 활동과 의지가 결정된 우주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운 우주를 만드는 방법일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갈리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업의 극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요?  

   








덧글

  • tranGster 2009/09/07 22:14 # 답글

    이 만화는 작가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좀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었죠.

    라스트 오더는... 3권까지 괜찮다가. 4권부터는 그냥 SF격투물입니다. 텐션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 sonofspace 2009/09/08 12:04 #

    네 좀 산만한 경향이 있죠. 라스트 오더는 말 그대로 이제는 그냥 격투물이 된 듯..
  • 아렛시 2009/12/10 01:26 # 삭제 답글

    제 형은 격투물을 좋아해서 라스트오더도 좋다고는 하지만 저는 SF시절의 총몽이 너무 좋았던지라 별로 손이 안 가더군요.

    그렇다고 또 제가 격투물을 싫어하는 건 아닌...
  • 이드 2010/02/04 11:43 # 삭제 답글

    멋진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겠습니다.

    아바타의 제임스카메론 감독의 다음 작품이 총몽으로 거론되고 있다해서
    걱정보다는 설레임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 공피 2010/05/21 20:43 # 삭제 답글

    라스트 오더 14권까지 읽었는데... 뭐 살짝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절대 격투물이라고 한정지을 순 없는 작품입니다.
    특히 카엘라 회상 챕터는 정말 감동이었고
    그 이후의 전개도 스케일이 환상적어서 감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벌려만 놓으면 졸작이겠지만, 하나하나의 연결고리가 권수가 진행될 수록
    맞물리는 것이 보여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키토는 정말 대단하고, 앞으로 제임스 카메론이 만드는 영화 역시 기대가 무척 됩니다.
  • The Night Before 2010/06/16 21:27 # 답글

    길지만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우리는 과거의 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진행될 뿐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언급하신 대사가 저도 가장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이미 열독한지 십년이나 지난 책이네요... 집구석 어딘가 고이 있을 이 책을 오늘 다시한번 꺼내 읽고 싶어졌습니다.
  • 케벨로스 2012/11/19 23:28 # 삭제 답글

    좋은글이라서 담아갑니다여 ^^
    http://cafe.daum.net/shogun
  • 진종이 2019/02/06 21:31 # 삭제 답글

    결국 노바는 책임없는 삶을 살고 싶었던거네 ㅋㅋ
    나쁜짓을하면 벌을받는다 라는 굴레가 싫은
    그냥 범죄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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