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7일
화해와 용서에 대하여
상반된 인식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민주주의의 위대한 선구자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북한 독재정권의 협력자라고 비난한다. 한쪽에서 그는 군사 독재와 온몸으로 맞서 싸우며 고난의 세월을 버텨온 인동초, 보복 없이 화합의 정치를 연 큰 사람, 인권과 정의의 대변자,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연 평화의 수호자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를 남한 빨갱이의 수령이자 호남의 수괴로 취급하며, 대한민국의 정당성에 대한 배반자로, 북한에 한없이 퍼주어서 체제를 존속시켰고 허울뿐인 평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반역자'를 국장으로 예우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임에 틀림없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언젠가 어머니랑 TV를 보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대해 말이 나온 적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발언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것도 다 돈으로 받은 거잖아. 북한에 퍼주고 해서." 난 어머니를 존경하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 북한이랑 평화로운 분위기가 됐었고, 평화는 좋은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천천히 통일로 가는 거죠." "그게 무슨 평화니. 그때 지원받은 돈으로 북한 애들이 핵도 개발하고 그런 거 아니냐." 그건 지금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 탓이 크다고 말했지만 별로 받아들이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은 아니다. 이웃을 생각할 줄 아시고,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나의 기본적인 도덕 관념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아마 내가 기억하기로 97년 대선 당시에는 김대중을 찍었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가 노벨평화상은 돈으로 받은 것이고 북한에 퍼준 돈으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했다고 말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성과를 깡그리 무시했을 때 나는 가슴 한구석이 돌덩이로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실까? 무엇이 그런 생각을 품게 했을까?
누가 국민을 분열시켰는가
금메달을 따든,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하든, 우주를 다녀오든, 유엔 사무총장이 되든, 한국인이 했다면 모든 언론은 흥분해서 한국인의 자랑이라며, 한국의 기상을 세계에 떨쳤다며,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기쁨을 안겨주었다며 온갖 찬양과 민족주의적 선동을 쏟아낸다(심지어 한 축구선수의 재계약에도 섬세한 신경을 쓴다). 한국인의 피가 조금만 섞여 있더라도 그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다면 한국인의 뛰어남에 대한 찬양은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이라는 굉장한 업적은 너무도 간단하게 '돈으로 받은 것'이라며 한없이 격하되고 있다. 대체 어째서? 어느 누가 또 노벨상을 받았던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위상이 높은 이 업적에는 왜 언론의 떠받듬이 없는 걸까? 스포츠 이벤트의 결과에는 거의 무조건적인 찬양과 열광을 표출해왔던 신문들이 왜 노벨상 수상의 경우에는 '공평과 정의의 시선'을 되찾은 듯 냉정하게 온갖 흠집을 찾고 로비의혹을 들먹인 걸까? 얼마든지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한국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킨 위인'으로 보도해서 여느 때처럼 국민들의 자부심을 만족시키고 온 국민의 화합을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반대로 수상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논리와 주장을 쏟아냈으며 그 결과 '국민들을 분열시켰다'. 지금까지도 이 분열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전 정부의 모든 성과를 이렇게 평가절하했다.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북한 퍼주기'와 '북한에 끌려다니기'로 윤색했고, 경제는 IMF 조기 탈출과 지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렀다. 북한을 함께 통일로 나아가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과 재벌 중심의 기득권층들이 만들어낸 논리가 10년 사이에 대규모로 퍼졌다. 그 결과는 역시 '국민의 분열'이었다. 평소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 논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반공교육을 직접 받은 중장년층에게 환영받았지만 이데올로기란 시대를 뛰어넘는다. 윗세대들의 품고 있는 적대감은 아랫세대로도 이어지며, 그래서 젊은 층들 사이에서도 평화와 화해, 협력은 필요하지만 '강경'한 정책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은 상당히 많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들 식대로의 구분대로라면 '보수'와 '진보(개혁)'의 갈등과 분열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심화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도, 훨씬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포장될 수 있었다.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인도적 지원과 통일을 향한 한 걸음'으로, '북한에 끌려다니기'가 아니라 '상호협력의 진일보한 남북 관계'라고 정의할 수도 있었다. 만약에 그 신문들이 그렇게 보도했다면, 현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훨씬 긍정적으로 변했을 것이고 이번 국장을 둘러싼 대립도 없었을 것이다. 필시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며, 아울러 이명박이 북한 인사들과 만난다고 빨갱이, 배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 재생산했으며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며 더욱 강경해졌다. 그 결과가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노무현,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 나타난 극우 세력의 추악스러운 난동이다. 물론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는 이들의 자유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사회니까. 나는 다만 이들의 보도가 국민들의 분열과 대립을 획책했다는 점을, 이들이 사람들의 증오와 분노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말'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한 번 사람들에게서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후에 '진실'이 밝혀져도 그대로 남는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제는 조선일보조차 '민주화 항쟁'이라고 인정하지만 아직도 당시 언론에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들은 '내란'이었다고, '북괴의 사주'였다고 생각하며, 대통령이 묘역에 참배하는 것에도 알레르기성 경기를 일으킨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내란 수괴, 빨갱이라는 당시의 보수 언론이 형성한 이미지는 지금까지 계속 존속하고 있다. 더 이상은 어떤 주류 언론도 그런 주장을 (노골적으로는) 하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못하는 악덕이 있다. 우리는 좀처럼 눈에 씌어진 색안경을 벗지 못한다. 그리고 이 색안경은 갈수록 점점 덧씌어져만 가고 있다.
누가 이런 색안경을 씌었으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반대하고, 북한 조문단을 반대하고, 남북 협력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체 누가 만들어냈던가? 한국 사회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극우 보수 단체들에게 이념과 논리를 제공해준 것은 이들 보수 언론이었다. 이르게는 해방 시기의 좌익 세력 탄압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색깔 시비와 최근 들어서는 햇볕정책 등에 대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화해'와 '화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증오와 분노만을 자극해왔다. 이제, 이 증오와 분노는 너무 멀리까지 진행되어서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멋모르는 꼬꼬마들까지 지역 감정에 놀아나고 있다.
화합, 화해, 용서. 모두 좋은 말이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사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과도 하지 않는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일 관계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된다. 어떤 사람들(주로 한나라당 관련)은 한일 관계가 이제는 과거를 넘어 화합의 미래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좋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앞에 먼저 '사과'가 있어야 하며 그 중요한 절차가 없기에 한일 관계는 여전히 화합의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과 없는 용서는 존재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을 기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신문들이 내세운 화합과 화해의 메시지가 불편한 것은 과거의 행적과 잘못에 대한 어떤 성찰과 반성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 '화해의 감동'은 감성을 뭉클하게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고인의 높은 뜻에도 불구하고, 한낱 한순간의 이벤트이자 립서비스에 불과할 것 같다. 보수 세력과 언론의 진정한 사과와 태도 변화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친일 경력에 대해서도, 독재 정권 협력의 경력에 대해서도, 김대중에 대해서도, 노무현에 대해서도 그들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80년 광주에 대해서도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의 잘못된 보도를 사과함으로써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진정한 화합으로 나갈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과하지 않았기에 '전라도 빨갱이'라는 기막힌 어구가 아직도 세상을 횡행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햇볕정책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이 견고하게 남아 있다. 이런 증오와 분노의 고리를 일으킨 이 장본인들이 아무런 사과도 없이, 이제는 화해와 용서의 시기라며 과거를 덮자고 말하는 모습에서 '파렴치'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그렇게 억지로 어설픈 화해로 가는 것이 정말 '고인이 원하는 길'일까?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껏 너무도 쉽게 '화합'과 '화해'를 말해왔다. 그러나 반면에 '반성'과 '사과'는 너무도 적었다. 친일 세력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과 심판 없이, 독재 세력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과 심판 없이, (나라가 어려운데) '국민이 화합해야 한다'며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건 '화합'이 아니라 '야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어설픈 봉합 때문에 아직까지도 상처가 심하게 덧나고 있다. 진정한 화합의 길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건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행동의 전면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건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야 하고 때로는 도려내기까지 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진정한 치유는 불가능하다. 그저 상처를 보이지 않게 반창고로 가려두고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을 우리는 '치유'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한 화합을 원한다면 지금보다 더 아파야 하고,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 허울뿐인 값싼 화합을 나는 경계하며,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용서해야 할 것과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시 떠올려본다.
ps. 그러나 상대를 정치적, 합리적으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무조건적인 분노를 부추기는 건 비단 보수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증오를 부추기는 건 소위 '진보'에도 만연한 문제다. 도덕과 감정이 아닌 이성과 이념에 근거하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by | 2009/08/27 21:11 |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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