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4일
쌍용자동차 투쟁을 지켜보며
쌍용차 투쟁이 끝났다. 노조는 패배했다. 정리해고는 막아내지 못했다. 파업 인원 중 48퍼센트만이 무급휴직으로 구제됐다. 나머지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 이미 2천여 명의 노동자가 희망 퇴직을 선택했다. 전체 7136명의 노동자 중 37퍼센트인 2646명을 줄이려던 사측의 계획은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얼추 달성되었다. 테이저 총이라는 신무기를 동원한 경찰의 폭력적인 탄압과 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여론에 쌍용차 노조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최후의 48퍼센트 안의 타협은 사실상 항복선언처럼 보였다. 위안은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패배만은 아니다. 70일 넘게 공장을 점거하면서 노동자들은 단결된 힘을 보여주고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만약 앞으로 어떤 기업에서 경영 방침의 실패이든 주식 투자의 실패이든 간에, 모종의 사정으로 재정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노동자의 반발을 우려해 손쉽게 정리해고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건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기업이 쉽게 정리해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게 된다면 그건 쌍용차 투쟁이 패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쌍용차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힘과 한계를 모두 보여주었으며, 향후에 노동과 자본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글은 쌍용차 투쟁과 파업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 대한 나 스스로의 정리이다.
한국의 노동계는 얼마나 강한가
지금은 아무리 보수적이고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사람도 노조 그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조중동 같은 보수지들도 항상 노동자를 위하는 듯한 논조를 취한다. 그들이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강성'노조이고, '귀족'노조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강성노조는 무분별한 파업과 폭력성으로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비정규직 같은) 다른 노동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한국 사회의 악의 축 같은 존재이다. 한국 강성노조의 무서움은 외국에까지 널리 잘 알려져 있어서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기까지 한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강성노조로 인한 기업과 사회의 피해가 막대한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없어져야 하고, 마치 테러리스트와 같은 이들과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며,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다룬 신문 기사와 주장들을 보며 항상 의아스러운데, 과연 한국의 노조가 정말로 그만한 힘이 있는가? 이런 주장에 따르면 정말 한국의 강성노조들은 사회를 마비시킬 만한 엄청난 힘을 지닌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로는 한국의 노동 세력은 부끄럽지만 약하기 이를 데 없다. 민주노총이 매번 총파업 어쩌고 하며 궁시렁 되지만, 그런 총파업 위협이 실현할 수 없는 '뻥'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주노총에 사회를 마비시킬 만한 그런 역량은 없다. 이번 역시도 노동계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는데, 금속노조의 약간의 연대가 있긴 했지만 현대차나 기아차 노조는 동조 파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인데도 말이다. 그나마 자동차 노조가 가장 잘 조직돼 있고, '강경한' 노조인데도 이렇다.
한국 노동계의 현실은 수치로도 분명하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고작 10.5퍼센트밖에 안 된다. 유럽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보다도 월등히 낮고 미국보다 다소 낮다. 87년 이후 90년대 초까지 상승하던 조직률은 그 후로 쭈욱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단지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바마는 작년 대선 시기에는 노동자 계급의 표를 의식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었으며, 자동차 노조를 의식해 한미 FTA의 자동차 협상을 다시 할 듯한 제스처도 취했다. 또한 당선 후에는 퇴직 수당을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 역시 자본가의 편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바마의 노조에 대한 발언은 확실히 우리와는 비교된다. "강한 노조가 없다면 강한 중산층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노동자와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링크)" 보면 화가 나지만 참고 삼아 우리 대통령 각하의 발언도 살펴보자.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왔다 갔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저렇게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10%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링크)" 그렇다, 우리 대통령 각하는 노동자는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해주시길 바란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노동자 자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양국 대통령의 발언은 두 나라가 노조를 대하는 자세와 노조가 차지하는 위상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대통령은 노조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10퍼센트밖에 안 되는 조직률에, 그마저도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는 정당에 충실히 투표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바로 저런 대통령 후보를 양대 노총의 하나가 지지하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파업이라도 할라치면(물론 하기도 힘들지만), 불법이다, 정치파업이다, 귀족노조다, 온갖 비난들이 빗발친다. 그것도 정권과 자본가층이 아닌 자칭 '선량한 시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말이다. 그렇게 노조는 늘상 고립되고 탄압받아 패배하기 일쑤이며, 노동자들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보다는 패배하거나 흐지부지 끝났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99년과 2004년의 지하철노조, 2004년의 LG 칼텍스, 화물연대 같은 굵직한 사건을 비롯한 크고 작은 패배의 기억들). 난 도무지 한국의 강한 노조가 문제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노조가 두려워 투자 못한다는 기업
난 노조 때문에 투자 못한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어도 정확히 어떤 기업이 그래서 투자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다. 정말로 노조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투자가의 발언을 찾고 싶어서 몇 시간 동안 검색을 해봤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보수 언론지의 사설이나 전경련 대표, 경제 연구소 등은 그렇다고 말하는데, 정확한 '사례'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일보의 다음 기사를 보자. 외국인 직접투자, 한국 외면 이라는 제목에 OECD 30國중 한국만 3년연속 투자 줄어 "강성 노조·규제 많아 투자 검토했다 철회"라고 소제목이 달려 있다. 그러나 기사 내용은 좀 많이 다르다. 기사에 따르면 "R사가 한국 시장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는 공장 부지가격이 투자비의 20%에 달할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성노조 운운은 기사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꼽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론지라면, 높은 부동산 가격이 외국인 투자를 막는다며 걱정해야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신문은 그러지 않는다(이유가 뭘까?)
강성노조 운운 하는 기사들은 거의 다 추측성이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외국인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규제와 강성노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에는 매우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중에는 물론 비싼 땅값 같은 문제도 있을 테지만 그들은 다른 이유는 도외시한 채 노조와 규제만을 문제로 꼽는다. 아무런 증명 절차 없이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안 한다"라는 문제에서 "옳거니 그건 한국의 강성노조 때문이야!"라는 해결책으로 도약한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직접 투자 감소라는 문제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노조 때문에 갈수록 기업하기가 힘들어져서 기업들이 외국으로 떠난다는 주장과는 다르게 통계는 파업일수가 꾸준히 줄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보이듯, 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 이후 파업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은 확연히 줄었다. 국제적으로 봐도 한국이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니다.

1994년부터 10년간 한국의 1000명당 평균 노동손실일수는 90일이었다. EU 평균은 63일, OECD평균은 51일로 한국이 다소 높다. 그래프에서 그 차이는 주로 1997~2001년도에 나타나며 이전까지는 비슷했다. 바로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정리해고 등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치며 발생한 일이다.
이렇듯 '강성노조'는 보수 언론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GM대우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해외 투자가들은 신문을 통해 한국의 뉴스를 접하지 않나. 데모하는 사진을 보게 되면서 잘못된 인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한국의 노조는 다른 국가 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 GM대우도 노조와 문제가 없다. 회사 차원에서 노조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투자 계획이 있으면 먼저 노조에게 얘기를 해준다. 그리고 공동 목표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한다. 노조 반응은 매우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상공회의소 윌리엄 오벌린 회장은 열린우리당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인들은 한국의 노사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언론의 과장된 보도로 대외적으로 한국 노동계가 강성으로 비춰지고 있다"
허구헌날 강성노조, 강성노조 타령을 부르던 언론 탓에 외국 투자가들도 정말로 한국은 강성노조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고 생각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보수언론이었다! 이제부터는 국가발전을 위해 보도를 진실되게 하길 바란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쌍용차 사태를 보며, "저 봐라, 저렇게 회사 생각 않고 투쟁만 하다보니 회사가 망해가지 않느냐. 회사와 싸울 생각만 하는 노조는 문제다"하고 혀를 찬다. 그러나 그들은 어째서 쌍용차보다 훨씬 더 노조가 강성인 현대차는 멀쩡한지 궁금하지 않은 걸까? 아마 임금으로 따져도 현대차가 쌍용차보다 더 '귀족'이면 귀족이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왜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쌍용차는 거의 망해가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기업의 위기가 정말 노조의 문제인가? 작년 GM대우는 파생상품으로 1조 원의 손실을 보았다는데 대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은폐되고 있는 갈등
다른 유형의 비판자들은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의 처우에는 무관심하다가 자신들의 밥줄이 달리니까 투쟁한다고 비난한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대기업 노조는 자신들밖에 모르며, 그들 '때문에' 비정규직과 하청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 난 이 주장에 완전히 동의한다. 단, 이 주장이 대기업 노조의 모든 행위를 부정하고 비난하지 않는 한에서만 동의한다.
2007년에 비정규직-정규직 노조 통합 시도가 무산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아차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도장 공장의 일부를 점거하고 원청 사용자인 기아차가 직접적인 임단협 교섭에 나서고 정규직과의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이 별것 아닌 요구에 사측은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구사대를 동원해가며 탄압했고, 기아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노조와 통합하여 같이 투쟁할 것을 결의하며 파업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결국 대의원 대회에서 찬성 46퍼센트에 그쳐 통합은 무산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을 극명히 보여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분명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작년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투표를 세 차례 진행했지만 모두 부결되었다.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분명 현실이고 넘어야 할 큰 벽이다.
그러나 비록 비정규직 문제에서 정규직 노조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만약 현대차나 기아차가 정리해고를 단행하려 하고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한다면 난 노조를 지지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몰염치하게 행동하고 어떻게 지지를 바라느냐"라고? 물론 노조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뭐? 그렇다고 해서 정리해고를 당해야 하나?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정리해고 당해서는 안 된다.
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바라는 만큼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바란다. 정규직-비정규직(또는 하청) 관계에서 정규직은 때로 사측과 연합해 상대적인 약자를 수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럴 때 난 정규직 노동자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정규직 관계에서는 정규직이 피해자가 된다. 이럴 때는 정규직 노조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좌파는 언제나 핍박받는 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나자렛의 위대한 이가 말했듯이. 만약 자본가가 악독한 노동조합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면 난 자본가의 편에 설 것이다.
노동자/노동자의 대립과 갈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실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가/노동자의 대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니 은폐되고 있을 뿐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전체 소득 중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7년 약 0.7에서 2003년에 0.6으로 줄어들었다. 이윤에서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몫은 더 줄어들었고, 주식배당금 등의 자본소득으로 더 많이 분배된 것이다. 저렴한 노동력을 통한 더 많은 이윤 창출이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나 노동 세력을 무너뜨리고 노동자 간의 분열을 획책하면서 자본은 배를 불려나가고 있다. 이번 일에서 보았듯이 '귀족'처럼 보이는 대기업의 노조도 얼마든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한낱 노동자에 불과하다.
지난 몇 년간 보수언론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을 '귀족' 노동자와 '천민' 노동자, 나아가 노동자와 실업자의 대립으로 가리려는 시도를 계속해왔고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귀족 노조'는 비판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반면 자본가는 이제는 선망의 대상이다. 한국 사회의 암적 존재는 이제 기득권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있는 귀족 노조이며, 이건희 같은 자본가는 이제 한국을 먹여살리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노동 계급은 서로를 적대하며 서로의 손에 쥔 지갑을 노려본다. 그리고 자본가에겐 은총을 내려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노동 계급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시민, 국민, 서민 어떤 말을 갖다붙여도 상관없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서부터 이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는 진정한 권력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밥그릇 투쟁을 넘어 정치로
노동 분쟁에서 회사측은 임금인상이라는 부분에는 상당히 관대하며 액수의 문제일 뿐 쉽게 타협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나 구조조정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완강하다. 자본가들은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안 등은 적절히 타협하면서 노동유연성의 문제는 철저히 방어하고 확대해나갔다. 노조 역시 조합원들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임금협상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화'는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안다, 그건 물론 중요한 일이다. 밥그릇은 정말로 신성하다.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투쟁을 전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안다. 대학교만 해도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은 비교적 조직하기 쉽지만, 무상교육을 위한 투쟁은 어렵다. 그리고 만약 노동조합이 연대투쟁을 하려 하면 노조의 이기주의를 공박하던 사람들이 안면을 싹 바꾸고 정치파업이라며 매도하고, 노조는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외쳐댄다. 그들에게는 자기 조합만의 이익에 충실한 현대중공업 노조와 KT노조가 선진 노조의 대표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전체의 구조 변화는 개별 노조의 활동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일깨워주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같은 산별 노조인 현대, 기아차 나아가 금속노조가 함께 싸웠다면 결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개별 노조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아직도 멀다. 그러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유럽 국가의 복지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은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었다. 1~2차 세계대전 전후를 거치며 성장한 노동운동의 압력과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노동당, 공산당, 사민당 등의 좌파 정당들의 연합이 정권을 잡으면서 자본가들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산화에 대한 두려움도 그런 양보를 하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 그냥 얻어진 것은 없다. 기득권층의 하사나 은총이 아니다. 모두가 투쟁의 산물이었다.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많은 부분에서 자본의 공세가 있었지만 아직도 이들 국가들은 우리에 비해선 월등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철의 여인 대처가 휘몰아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진행한 영국조차도 그렇다.
강력한 대중의 지지, 파업이나 집회로 현실화될 수 있는 그런 지지 없이는 어떤 정당도 기득권층에게 양보를 이끌어낼 수 없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다수당이었음에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진행한 4대 입법조차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했듯. 정권이 바뀌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사회개혁을 위해서는(비단 혁명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그런 강한 세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그 하나가 될 수 있다(물론 전부는 아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단결된 노동자의 힘은 강하다. 나는 이 노동자들이 힘이 더 강해지기를, 그들이 더 정치적이 되기를, 그래서 사회적 공공성을 지키는 싸움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시는 쌍용차 노동자 같은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세상을 위해서.
# by | 2009/08/14 20:54 | 생각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정치"에 뜻을 가지고 있는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세력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타개할 수 있을까요? 기륭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뉴코아-이랜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사분규 상황에서 다수의 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격렬하게 '외부세력'을 비난하는데, 외부세력은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요? 단기간에 답이 나올 수 있는 의문은 아니겠죠.
아무튼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는 데 어떻게 갈지 방도를 몰라서 답답한 상황이네요. 하지만 저만 해도 20대 초까지만 해도 전혀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강성노조' 프레임에 많이 갇혀 있었죠. '온건'하고 '협조'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저도 인식이 달라졌듯 다른 사람들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쓰고 있고요(물론 읽는 사람들은 얼마 없겠지만^^)
일단 외국에선 더 심한 규모의 파업도 있지 않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