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14일
더불어 살아가기
감자와 까치밥
몇 년 전, 대학교 2학년 때 여름농활에서의 일입니다. 일과가 끝나고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밭에서 아직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님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좀 여유가 있어 도와드리기로 하고 같이 밭일을 했습니다. 그 밭은 작은 감자밭이었습니다. 큰 밭이야 요즘은 기계로 캐내지만 작은 밭은 호미로 흙을 뒤집으며 감자알을 골라내야 합니다. 땅속에서 둥근 감자가 나오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직접 한 알 한 알 캐내는 재미도 있어서 수확의 기쁨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원래 농활이 단순히 일만 하러 가는 게 아니고 농민분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농촌의 정서를 배우고 이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알려는 게 더 큰 목적인지라 그때도 할머님들과 자식 얘기, 농사 얘기, 시시콜콜한 살아가는 얘기들을 하며 옆에서 같이 일했지요. 그렇게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일하시는 할머니가 작은 감자알은 그대로 땅속에 두고 큰 감자알만 주워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지요. "할머니 저 감자는 왜 안 캐세요?" "으응, 저건 작으니까 안 캐고 벌레들 먹으라고 두는 거여. 갸들도 먹고 살아야지." "아 그렇네요." 그리고 저도 작은 감자는 벌레 몫으로 남기고 큰 것만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벌레들의 몫. 밭에 사는 벌레들에게도 먹을 것을 남겨줘야 한다는 그 마음에 어쩐지 인생의 큰 교훈 하나를 배운 것 같았지요.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미물에게도 살아갈 몫을 남겨주는 그 넉넉함과 여유가 어딘지 아릿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곳에서 그런 넉넉한 마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 감을 따고서 까치들의 몫으로 남겨놓는 까치밥도 그런 경우겠지요. 어디 까치뿐일까요. 밤이나 잣 같은 다른 작물들을 수확할 때도 조금씩은 남겨두어 산짐승, 들짐승들을 배려하는 풍습이 고래로부터 있었습니다. 농부가 콩을 심을 때는 한 곳에 세 알을 심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벌레의 것, 하나는 새의 것, 하나는 인간의 것. 듣기로는 야외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밖으로 음식을 뿌리는 '고수레' 풍습도 주변의 온 자연과 더불어 먹고 나누고자 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 하나'만 먹어서는 안 되고, 나 혼자서 차지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산물은 다같이 나누는 것이며, 세상은 더불어 다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선한 마음들을 까치밥 같은 작은 배려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옛 마을을 지나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풍습들은 단순히 사람이 착해서, 너그러운 마음의 발로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물에 조금씩 몫을 남겨주는 풍습에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감자의 경우, 작은 감자를 남겨둔다면 흙속에 사는 벌레와 미생물들이 감자를 양식삼아 번성할 것이고 그들의 번성은 밭의 흙을 비옥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의 농사 때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오겠죠. 까치밥도 그렇습니다. 까치밥을 남겨둠으로써 까치들이 밭에 내려가 다른 작물들을 먹어치우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요즘 몇 년 사이에 야생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와 피해를 주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그들의 몫을 남겨두는 일이 영 터무니없고 비경제적인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길이 진정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런 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삶'이겠지요.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그러나 이런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들이 현실의 경제환경에서는 도통 통하지가 않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오래간다는 소박한 진리는 복잡하고 이상야릇한 논리들에 가리기 일쑤이고, 세상은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탐욕꾼들로 가득 찬 듯합니다.
얼마 전, 최저임금이 4,110원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전의 4000원에서 2.75퍼센트 올랐지요. 정말 쥐꼬리만큼 오른 거지만 사실 이것도 다행일지 모릅니다. 경영계 인사들은 경기가 어렵다며 오히려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했으니까요. 노동계 측은 13퍼센트 인상을 주장했지만 간신히 삭감을 면하고 2.75퍼센트 인상하는 데 그쳤습니다. 물론 물가 인상을 감안한다면 삭감이나 다름없겠죠. 현재 최저임금이 4000원인데 이걸 한달로 환산하면 83만 6000원입니다. 그 유명한 88만 원보다도 적지요. 게다가 노동자 평균 임금의 36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이걸 또 줄이자고 주장하다니... 이 사람들은 까치밥을 남겨주기는커녕 가지고 있는 것마저 약탈하려나 봅니다. 저소득자들의 이런 최후의 보루마저 허물려는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한 기업은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서 경영이 힘들어지고 그러면 고용이 줄어든다며 딴에는 굉장히 노동자들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줄이려는 것인양 말합니다. 척 듣기에도 얄딱구리한 논리이고, 이를 증명해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식견해는 이렇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제도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미미하며 일반적으로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소득분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또한 미국 등에서는 경제위기를 맞아 내수소비를 증진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싶은 모양입니다. 뭐 우리나라야 수출로 먹고사니까 내수 따위는 상관없으려나요.
더불어 살 줄 모르는 야박한 태도는 비정규직 법안에서도 보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면 노동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마음 편히 일하며 일자리를 걱정하지 않을 권리 또한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상충된다면 타협점이나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그러나 현재 눈에 빤히 보이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계속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역시 비정규직이 해고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며 눈물겨운 노동자 사랑을 보여줍니다. 정말 비정규직의 처우를 생각한다면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편법 해고를 막는 것이 급선무겠지만 이 사람들은 그러기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좀더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줘야 비정규직에 도움이 된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칩니다. 여기서도 넉넉함과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
어느 생태계이건 어느 특정 종만 번성하는 생태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약육강식이라고들 합니다만, 사실 자연에 약과 강은 없습니다. 호랑이든 토끼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갑니다. 어느 한 종이 위기에 처하면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도 생태계의 일부이기에 인류의 안녕도 다른 자연물과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자연물과 더불어 살려 했던 우리의 조상들, 더 나아가 세계의 전통사회들은 이런 사실을 몸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인간 세상에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 계급만이 특권과 부를 독차지한 사회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봐왔습니다. 현실을 봐도, 한국의 높은 대외의존도와 빈곤한 내수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 지 오래이고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도 이를 지적합니다. 우리는 비슷한 경제 체제인 일본보다도 대외의존도가 세 배나 높고, 특히나 IMF를 맞아 시작된 신자유주의 재편 이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진작에 대기업, 재벌 중심의 압축 성장을 탈피하고 중산층을 탄탄히 육성했어야 했음에도 한국은 갈수록 이들에게 '몰아주기'를 해왔습니다. 툭하면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니 FTA 등 개방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우리는 수출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이제 내수를 신경 쓸 때다'라고 말했어야 옳았을 겁니다. 내수를 신경 쓴다는 것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소득을 늘려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에게 까치밥을 남겨주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피폐해지는 중산층. 약해진 경제 체질 때문에 국제적 변동 때마다 휘청거리는 경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과는 너무도 멀어 보이는 모습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단기간에 이득을 최대한 빨아먹고 빠지는 투기 자본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저는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의 인간성과 부합할 뿐 아니라 오래도록 안정적인 경제 체제를 유지해가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감세 정책 등으로) 전체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역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논리와 여론 호도, 교묘한 술책은 이런 헛소리를 수긍하게 만듭니다. 사회의 부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 부의 증진에 달려 있다는 것은 명백하며, 특히 사회적 최약자들이 생활 수준이 그 나라 전체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약자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모두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 약자 보호, 경제적 불평등 해소는 우리 양심에 있는 정의의 명령일 뿐 아니라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위한 필수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일자리에서 오래 버티기도, 집을 구하기도, 살아가기도 점점 힘들어지는 지금 사회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건 '벌레들의 몫'을 남겨주는 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 감자와 까치밥을 남기는 것이 낭비이고 비효율이라는 얕은 생각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그리고 이런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중세의 시인 존 던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부분이다...(중략)...어떤 이의 죽음에도 나는 줄어든다/인류의 일부인 나는" 타인의 삶이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아는 것. 그러니 함께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일, 그런 세상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 by | 2009/07/14 22:51 |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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