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만화들] 인간이야말로 <기생수>다!

"지구상의 누군가가 생각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많은 종들이 살아남을 수 일을까?" 이와사키 히토시의 출세작 <기생수>는 이런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질문으로 독자들을 고민에 빠뜨리며 시작합니다. <기생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해봤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이 없다면 자연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에게 해만 끼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왜 태어난 걸까?" 당시 일기 시작한 자연파괴, 환경파괴의 문제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져봤을 겁니다. 이와사키 히토시는 이런 의문을 발전시켜 <기생수>라는 훌륭한 만화로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는 이 만화에서 인간의 존재의의를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한 번쯤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환경을 고민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사실 이와사키 히토시는 그림을 잘 그리는 만화가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못 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작인 <히스토리에>에서도 그림은 그다지 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태생적인 문제라고 보입니다. 컷 사용은 답답하고, 액션은 역동성이 떨어집니다. 전투는 박진감이 없습니다. 인물의 표정 묘사도 감정을 잘 전달해주지 못하고 캐릭터들의 매력도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와사키 히토시는 이런 단점을 모두 무시할 만큼 강력한 내러티브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생수>, <칠석의 나라>, <히스토리에>까지 국내 발간된 이와사키 히토시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캐릭터들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작가는 그림이나 캐릭터성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에 집중합니다.

<기생수>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뇌를 차지하여 인간을 잡아먹는 '기생생물'이 출연하면서 시작합니다. 기생생물이 무엇이고 어째서 출현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떡밥으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화의 첫 장에 등장하는 나레이션들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보여줍니다. "인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오염 물질도 절반으로 줄어들까... 지구상의 누군가가 생각했다. 모든 생물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이런 문장 뒤에 곧바로 기생생물이 등장하는 내용 전개를 보며 독자들은 인간이 지구에 대한 '기생생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이 줄어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과격한 질문을 던지게 되며, 작가가 던진 고민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런 고민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주인공 신이치입니다. 우연히 기생생물이 뇌를 차지하지 못해 오른손에 기생하게 된 신이치는 기생생물 '오른쪽이'와 같이 살아가면서 기생생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점차적으로 신이치는 여러 면에서 기생생물처럼 변해갑니다. 조금씩 신이치는 마치 '기생생물'처럼 다른 인간들을 생각하게 되며 그 사실에 괴로워하죠. 어머니에게 기생한 기생생물에게 가슴에 구멍이 뚫리면서 이런 정체성의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를 죽인 기생생물에게 당한 상처, 그리고 복수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이치는 많은 부분 '인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실제로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생생물은 '오른쪽이'의 세포가 신이치의 몸속에 섞여 들어갔기에 신이치의 이런 '기생생물화'는 물질적으로도 진행됩니다. 신이치가 이후로 아무리 슬픈 상황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역설적으로 신이치가 눈물을 되찾게 되는 것은 기생생물을 통해입니다. 그 계기인 기생생물 타무라 레이코의 최후는 만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성을 추구하는 기생생물인 타무라 레이코는 실험의 방편으로 인간의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합니다. 생식 능력이 없으며(아이를 임신할 수 있던 것은 인간의 몸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아기는 기생생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을 오로지 먹이로만 생각하는 기생생물이지만 놀랍게도 타무라 레이코는 조금씩 '모성애'를 느끼게 됩니다. 경찰들에게 포위당한 마지막 순간에 타무라 레이코는 자신의 도주보다 아기의 안전을 우선해서 생각하고 아기를 총탄으로부터 보호합니다. 혼자서라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기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총탄을 받아내며 신이치에게로 걸어가는 장면은 <기생수>의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신이치는 그녀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며, .'인간의 아기'를 건네받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건네받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지 않았을까요? "돌아왔어, 눈물이..."라는 대사는 어쩐지 저에게는 "돌아왔어, '마음'이..."라고 들립니다.



(기생동물인 타무라 레이코가 자기 아이를 지키는 모습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신이치는 이런 모습에 과거에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가'라는 처음의 문제의식은 끝까지도 강렬히 남아 있습니다. 이 만화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는 인간임에도 기생생물의 편에서서 인간을 줄이는 데 협력하는 시장입니다. 모든 생명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시장의 일갈은 우리가 인간임에도 분명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 주장에 동의하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 역시 생명이고 살고 싶기 때문이죠. 만화에서 신이치는 어떤 대의명분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싸웁니다. 사실상 인간이 살아야'만' 하는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해야만 할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만화 중의 대사처럼 우리는 "우리가 외롭기 때문에 다른 생물을 신경쓰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할 따름입니다. 이것이 비록 순전히 인간 중심적일지라도, 종(種)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으로도 환경 보호라는 목적에 충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서 인간은 다른 종을 의식적으로 배려하고 신경쓸 수 있는 유리한 생물이기도 합니다.


<기생수>는 인간을 부정하는 듯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작가의 의도는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는 데 있습니다. 작가는 기생생물인 '오른쪽이'의 말을 빌어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도 눈물 흘리고, 다른 사람 또는 생물을 아끼고 배려하는 '여유'가, 어찌 보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나약함'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마음이 인간의 멋진 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장점이라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인간을 부정하며 시작한 이 만화는 최종적으로는는 인간을 무엇보다도 강하게 긍정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자신과 상관 없는 생명의 죽음에도 슬퍼하는 것, 저 또한 이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며, 인간의 모든 추악함에도 가려지지 않는 보석 같은 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가'라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물음은 모든 생명은 지구에 의지하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다른 방향의 통찰로 결론을 맺는다.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고 있겠지만 그건 인간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점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by sonofspace | 2009/06/17 22:25 | 즐거운 인생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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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ontoLion at 2009/06/19 02:28
언제나 좋은 글을 보는군요. 기생수는 저역시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었지요.

제가 처음 기생수를 본것은 아마 중고딩때였을겁니다. 그때는 어려서 아... 이런 작품이 있다니...

잘은 모르겠어도 뭔가 찡하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레이코이야기라던가 신이치의 몸에서 오른쪽이가 잠을 들고 신이치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그가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때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힘으로 살아남을때 오른팔이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 장면에서 보면 다시한번 둘은 서로 띌수 없고 기대는 존재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수의 약점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업폐기독성이라던가... 정말 많은점을 느끼게한 작품이지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6/19 14:50
저도 처음 본 건 중학교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동족을 잡아먹는 기생수의 모습은 쇼크였지요. 멋진 작품이고 대단한 만화가입니다.
Commented by ? at 2009/07/12 15:47
내용알긴 하시는거에요? 옥상에서 그가 떨어지는게 아니고 그의 여자친구가 살인마한테 밀려서 떨어진거를 손을 놓쳐서 울면서 내면으로 들어가는데 오른팔이가 아니고 오른쪽이가 이제 니가 들어 하면서 깨어나죠 깨어나보니 오른손에 여자친구 들려있었음
Commented at 2009/07/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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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좀모씨 at 2009/07/16 11:48
저도 꽤 재미있게 봤던 만화에요. 세세한 기억은 밥말아먹었지만 말입니다.
즐거운 읽을거리가 많이 있군요. 링크 신고합니다 :)
Commented at 2009/07/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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