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가 불평등을 해소한다면 나는 시장주의자가 되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열찬 논쟁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인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올바른 시장원리, 경제적 투명성, 합리적 상벌 체계 모두 좋은 말들이고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다. 적어도 정치계와 사법부를 장악하여 게임의 룰을 어지럽히는 재벌과 토호 세력이 판을 치는 이 나라의 경제 환경이 정상화되길 바라는 마음에는 나도 동감한다. 거듭 말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발전 필요성에도 매우 공감한다. 난 이른바 '건전한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내지 시장주의라는 방책으로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려 하는 좋은 의도를 가졌으리라 믿는다. 비록 관점이 다를지라도 방향이 같으면 때에 따라 협력할 수 있다.


내가 의아한 지점은 시장원리를 더 도입해야 한다는 당위명제 아래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 공무원, 대기업 노동자로 표상되는 '노블레스들'에게 시장원리를 흘려야 한국이 산다면, 시장원리를 흘리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일이 어떻게 해서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들과 그 아래 '하층민'들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게 되는 걸까? 글을 아무리 읽어도 시장원리 도입이 정책적으로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시장원리 도입과 불평등 해소와의 연결 고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이런 결론밖에 없다.
"만약 한국의 노블레스들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나 시장의 요구에 치열하게 응답하도록 시장 구조와 평가보상 체계를 개혁한다면, 그래서 이들이 승자재신임전과 패자부활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환경에 놓인다면, 한마디로 이들이 성과주의, 시장주의로 인해 양극화 된다고 비명을 지른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들은 세계적인 기술이나 상품도 만들지만, 합리적인 상벌체계와 리더십도 만들며, 양극화가 자신들의 문제로 된다면, 양극화가 극심해 지지 않도록 게임 규칙을 설계할 것이기 때문이다."(노블레스에게 좀 더 많은 시장원리를 흘려야 한국이 산다)


난 이런 결론에서 지적인 나이브함만을 발견한다. 교사, 공무원, 대기업 노동자들이 시장주의로 양극화된다면 자동적으로 합리적인 상벌체계를 만들고 양극화가 극심해지지 않도록 게임규칙을 설계할까? 다시 그 안에서 기득권층이 공고화되지는 않을까? 아니 애당초 이들이 게임의 규칙을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는 한가? 차라리 국회의원들에게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들이 양극화에 시달리고 나면 양극화 문제에 적극 나설지도 모르니까. 


통계의 해석
 게다가 통계의 해석이 어째 좀 이상하다. 어째서 교육보다 행정 처리에 능한 사람이 빨리 승진하는 체계가 교사들의 기득권 문제로 연결되는 걸까? 교사가 교육에 매진하지 못하고 행정 처리에 매달리고 있다면 행정지원직을 더 뽑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1인당 학생수가 많고  노동시간이 높은 게 문제라면 일단 교직 자리의 수를 늘려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교직 사회에 올바른 평가 체계와 시장원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재정이 부족한 게 더 큰 문제 같다.

또 우리나라 교사들의 대우가 그렇게 좋았던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 논거로  이용한 OECD 교육지표 자표를 나도 좀 살펴봤다. 그런데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먼저 미국의 경우에 교사에 지급되는 추가 수당이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약 6000달러 정도가 낮게 산출되며, 영국의 경우는 6년 이상 근속의 근무자들에게는 상위호봉 체계가 적용되는데 이게 반영이 되지 않아 약 만 달러 정도가 낮게 산출된단다. 물론 북유럽 국가는 연대임금제과 사회 체제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연봉의 액수가 아니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비교해보는 통계도 존재한다.
 

요약하면, 전체 액수는 적을지라도 미국과 일본의 교사들이 삶의 질은 더 풍요로울 것이다.


근무 조건을 고려한 비교도 있다.

수업일수와 학생수를 비교해봤을 때는 한국의 교사가 더 적게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자세한 건 이 자료를 참고 바란다.

내가 이로부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한국은 물가가 너무 높아서 명목 임금이 높아봤자 생활이 윤택하다고 볼 수 없다. 교사 수가 부족하고, 수업 일수가 많고, 행정 업무에 시달린다. 아무리 봐도 이건 시장원리와 상벌체계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차라리 교육재정의 확충을 주장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매번 정권은 교육재정을 OECD 평균인 5퍼센트까지 확충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능력과 효율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시장의 원리를 빌리자면, 소비자 즉 학부모를 만족시키는 교사가 뛰어난 교사일 것이다. 현행 교육제도 아래에서는 당연히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고, '일류대학에 많이 보내는' 교사가 우수한 교사로 뽑힐 것이다. 평가의 기준이 이런 상황에서 시장원리의 도입과 교사의 효율성 운운은 문제의 해답이 되지 못한다. 교사 평가를 하려면 우선은 대학 진학 위주의 교육 정책의 파기와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삼는 인사 관행의 타파, 아니면 대학평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는 어떻게 노블레스가 되었나?
오늘날 분명 교사는 최고의 선망 직업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 지위의 상승이 아니라 다른 직업군의 하강에서 비롯된 일이다. 교사가 노블레스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시 현상이다. 사람들이 교사와 공무원에 몰리는 이유는 다른 일자리가 워낙에 불안정하고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윗세대들이 가끔 말하듯이 몇십 년 전만 해도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사기업체도 정년을 보장했으며, 소득이 더 높았고, 출세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컸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조차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으로 야기된 사회의 전반적인 유연성 강화. 사회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건 이 이후다. 반면 교사와 공무원은 이 영향을 덜 받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교사, 5급, 7급, 9급 공무원, 경찰. 안정된 소득과 노후를 보장해주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공공성이라는 명분과 함께, 전교조와 전공노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유연화의 압력을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강한 노조가 존재한 대기업들도 상대적으로는 근로조건의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인 비정규직과 기간제교사의 범람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건 분명히 조합주의적 투쟁의 성과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시장원리를 더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시장원리란 고용과 해고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제거하고 능력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쉽게 자르고, 그만큼 쉽게 고용하며, 일을 잘하면 많이 받고, 일을 못하면 조금 받거나 짤리는 것. 이러면 확실히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차이는 없어진다. 모두가 사실상 기간제 교사가 되니까. 이러면 대체 어떻게 해서 사회의 효율성이 강화되고 전반적으로 발전하는지 도무지 그 매커니즘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재촉하지 않아도 이미 시장원리는 착실히 도입되고 있다. 교원 평가, 교사 성과급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으며, 이미 교사의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 대기발령자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미 교사와 공무원도 철밥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금 노블레스처럼 보인다면 그건 다른 직업들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 격차가 커 보이더라도 하향평준화를 바랄 순 없는 일이다. 
 


시장주의의 한계
콜트-콜텍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기타를 만드는 중소기업으로 기타의 품질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났다. 당연히 회사는 매년 수십억 흑자를 봤다. 사장은 그 덕에 한국 부자 순위 120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노동 조건이 너무 열악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회사는 물량 감소와 단 한 해의 적자를 이유로 폐업을 신고하고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80여 명의 노동자들은 남겨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이게 3년 전, 이들은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다.


콜텍이 그렇게 된 건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 때문도 '불공정한' 시장의 문제 때문도 아니었다. 사측의 노조 혐오와 생산비 절감을 통한 철저한 이윤 추구 때문이며, 이는 시장의 관점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수틀리면 공장을 옮겨버리는 자본의 국제이동 시대에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혹은 이렇게 버림받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나도 아직 방법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시장주의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주의 자체가 이런 문제의 원인이다.


시장주의가 진정으로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전반의 발전을 가져온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시장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시장주의를 전면에 내건 국가들 중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서 시장원리가 전 영역에 걸쳐 점차 도입되면서 불평등도 점차 커졌다. 시장주의의 대표격인 미국의 경우, 거대기업과 거대노조의 진입장벽이 높았던 과거보다 세계화와 IT 발달로 진입장벽이 낮아진 지금이 더욱 불평등이 커졌다. 물론 그것을 시장 실패라고 말하기에는 과할지도 모른다.  로버트 라이시의 견해가 적절하다고 본다. .

자본주의의 역할은 경제적인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 파이의 조각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리고 깨끗한 공기 같은 공공재를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지는 사회가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부과된 역할이다(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시장은 그 자체로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시민사회에서의 정치적 합의에 달린 문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부를 어떻게, 어느 수준까지 나누느냐에 대한 합의 같다.


김대호 님을 비롯한 자유주의 성향의 분들은 연대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전교조나 전공노,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노조들이 '연대의 정신'을 발휘해서 이득을 나눌 리가 없으므로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서 그들의 기득권을 허물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러한 '과소시장'을 넓혀 더 많은 사람이 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에 대한 무관심은 나도 맹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서 진정 좌파적 자세는 더 많은 연대를 주장하고 '귀족노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귀족들을 성토하는 것이지 어찌 시장주의가 답이 될 수 있을까?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자본을 규제하는 것이 현실에서 지지를 받기 힘들다고 어찌 시장의 원리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 비록 소수이고, 당장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좌파의 이념까지 저버릴 수는 없다. 그건 중도 우파의 길일지언정 좌파가 갈 수는 없고 가서도 안 되는 길이다. 난 그분들이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존중하는 바이지만, 좌파도 함께 그 길을 가자는 제안은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중도우파분들이 열심히 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by sonofspace | 2009/03/27 18:22 | 생각 | 트랙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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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로그스의 Thought.. at 2009/07/15 11:40

제목 :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_Reith Lectures 2..
Reith Lectures 2009 1강: Markets and Morals 다운로드 * 시장의 성공 = 공공의 이익? 이번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지난 30년간의 대처/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시장만능주의', 클린턴/블레어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기간동안에는 시장이 공공의 이익을 이루는데 가장 최적의 방법인 것 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more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3/27 18:55
디테일한 지적이 정확치밀해서 보기 좋군요. 아쉬운 건 엑박?;;;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7 19:06
앗 그런 일이..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ㅂㅂ at 2009/03/27 21:08
교사라는 새끼들이 지들이 뭐라도 되는 양 깝치는 꼴이 좀 우습긴 합니다만

전교조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죠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8 02:16
그러나 사실 별거 없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해요..
Commented by Picketline at 2009/03/28 05:37
웃기는 것은 전교조 욕하는 세력들인 교총도 자신들은 노동자가 될 수 없고 노동조합도 아니라면서 전교조를 따라서 매년 단체교섭하지요,

전교조가 교원노조 합법화를 쟁취해놓으니깐, 뉴라이트 몇몇 인사들은 웃기는 내부 논쟁을 거쳐 교원노조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어요. 이런 것을 무임승차라고 해요. 제발 승차권 사서 올라타야죠.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3/27 23:30
그러고보니 기억나는데, 지적하신 대로 저 자료는 고의라면 조작이고 아니라면 어처구니없는 착오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어째 그런 지적은 무시당하고 그림파일들만 끈질기게 떠돌고 있지요. 재미있게도 노무현파 '시장주의자들' 과 극우 반전교조 세력이 저 자료를 이용하는 데에서는 합심하더군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8 02:15
해석의 측면이 다양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해달 at 2009/03/28 01:24
최저 생계비 대비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최저 생계비가 비교 국가보다 높습니다. 유럽쪽하고 비교하라고 하고싶은.....
연합에 대한 신뢰가 최저치를 달리는거야 경험적인 소득인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8 02:15
최저생계비는 물가와 공공서비스, 사회복지의 차이 때문에 절대적 액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치저생계비가 높다는 건 그만큼 살아가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미국과 일본의 최저생계비가 어떻게 측정되고 그만큼의 소득으로 어느 정도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미국이나 일본의 최저생계비 생활자가 한국의 최저생활비 생활자보다 삶의 질이 훨씬 열악하다면 저 비교는 옳지 않겠죠). 한국의 경우에는 참여연대가 '최저생활비로 한달나기' 실험을 했었는데 참가한 5가구가 모두 적자를 기록했었습니다. 지금의 최저생계비로도 최저한의 생활을 살기가 힘든 셈이지요. 그럼에도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노동자들도 많으니 암담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0012993
Commented by 해달 at 2009/03/28 23:10
그냥 가볍게 눈에 보이는 월급으로 비교(달러로) 하지 않고 굳이 최저 생계비와 비교한 저의가 궁금한거지 우리나라 최저 생계비 수준에 대해서는 논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 부분은 조금 더 전문적인 부분이며 단순히 그걸로 생존이 가능하네 마네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제가 알기론 저 표가 OECD 가입국 교사 월급 비교하다 나온 표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나라 교사 월급이 적진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Commented at 2009/03/28 05: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35
아는 사람 중 공무원이나 교사하는 사람들을 봐도 귀족이라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대운하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이니 적극 지원하나보군요.
Commented by 김c at 2009/03/28 07:13
시장 주의로 대기업노조나 전교조를 없애 버리자? ㅎㅎ
진짜 개소리리죠. 어디서 어설프게 줃어서 들어서 씨부리는 자기병신인증글이죠.

진짜로 시장주의를 알고 그렇게 주장하는지.. 산업혁명 2차기에 보시면, 영국의 노동자 평균수명이 35세였습니다. 어린이들이 6세부터 20시간 노동을 하고 최저생계비? 훗..그딴것은 없죠.

정말 시장주의로 기득권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한마디로 철지난 경제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로 작금의 국정을 하고 있는 임면박이 추정자라고 보시면될듯.

시장주의로 기득권을 없애자=모두 평등하게 분배하자. 즉 병진인증..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0
정규직 노조 중심의 투쟁만을 추구하는 민주노총은 분명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 보잘것없는 기득권의 해체를 한국 사회의 시급한 문제로 보는 진단에는 동의할 수 없더라고요.
일단 부동산 토호들과 재벌의 이익을 환수할 방안은 생각하지 않고서...
Commented by 원래그런놈 at 2009/03/28 10:54
도대체 언제부터 교사란 직업이 기득권이 된 것이지요? 어이가 없어서리.....

시장주의로 왜곡되서 피해를 입은 것을 그나마 덜 왜곡된 곳에 시장주의를 들이미는 것으로 보상받으려고 하다니...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1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니 곤란하지요.
Commented by Lee at 2009/03/28 12:05
김대호와 마케터, 우파죠.
한나라당과 자신들이 차별된다고 철썩같이 믿는 나름 합리적 우파.


근데, 이들의 실체는 본인들이 인증을 하듯이
시장주의를 제대로 안해서 이런 위기가 왔으니 제대로 된 시장주의를 도입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대책 안서는 눈뜬 장님들.
전 세계가 왜 이런 위기에 처했는지 눈을 딱 감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정권 교체가 왜 됐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저런 얼치기들 덕에 미래가 참 암담하지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3
나쁜 분들은 아니시고, 미래를 나름대로 걱정하시는 분들인데 단지 자신들을 계속 좌파라고 하시니 좀 껄끄럽더라고요. 그건 절대로 좌파가 아닌데 말이죠.
Commented by 삼장군 at 2009/03/28 12:36
"교사, 공무원, 대기업 노동자로 표상되는 '노블레스들'에게"
라고 하셨는데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문장의 정치함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REAL이 날라갔다는 느낌.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4
글에서 먹물기를 빼야 되는데 잘 안 되네요. 쉽게 쓰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Commented by 유치찬란 at 2009/03/28 14:12
이 글을 읽으면서, 논의가 됬었던 저 노블레스니 하는 글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점들이 조금 해소가 되는군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4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09/03/28 18:28
연대를 한다고 했는데 연대의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겁니까?
요즘의 이 시점까지 연대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건 뭐 영구기관이나 타임머신을 만들자는 소리나 동급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연대..하면 좋죠. 다만 그딴걸 아무도 할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끝난 이야기 계속 해 봤자 서로 힘만 빠지는거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48
저는 무리를 넘어 상식을 파괴하는 그렌단이기 때문에....농담이고요, 저도 어렵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시합 종료니까요. 또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합심해서 투쟁해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낸 이랜드의 경우 같은 것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품어봅니다.
Commented by 바보 at 2009/03/28 22:06
김대호 님 등은 사실 중도 보수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들의 오류는 "시장주의"라는 해외에서 들여온 용어를 제대로 고민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 스스로도 이 시장주의라는 것이 뭔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수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오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뭔가 바꿔보려고 했다기 보다는 과거 NL주사들이 하던 것 처럼 자신들의 오류를 덮기위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시장주의는 좋은 시장주의라는 억지주장을 펼쳤습니다.
이정도에서라도 멈추었다면 그들이 중도보수정도는 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시장주의가 신자유주의나 대처의 신자유주의와 비슷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할 지경에 이르고 이것을 다시 무마시키기 위해 기어이 신자유주의나 대처리즘도 진보적 가치라는 고등학생들도 믿지 않을 코미디를 펼친 것 입니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특수하다고 해도 군사 독재가 한국 특색의 민주주의로 탈바꿈 될 수 없는 것 처럼 신자유주의나 대처리즘도 진보적 가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마켓터(?)라는 분이 시장주의가 시장만능주의는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제 그 정도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말꼬리 잡는다고 변명하지 말고 '시장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더 공부를 해보시라고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마켓터님이 말하는 시장주의가 시장만능주의는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 신자유주의가 등장할 때 내걸었던 바로 그 래퍼토리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경제 위기에서 보듯이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그러한 시장주의 자체에 엄청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는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는 말에 현혹되었던 사람들이 지금 그것은 한낱 꿈이었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시장주의라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시장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과는 다르고 시장에 대한 존중과도 다른 것으로 그것을 넘어 시장의 자율쪽으로 더 깊게 들어 가는 것입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김대호님 등이 제시하려는 대안은 굳이 전세계적으로 몰락한 신자유주의나 시장주의 같은 보수적 가치를 도입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안에서 충분히 대안 제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김대호님이나 마켓터님도 어렴풋이 짐작했을 것입니다.

잔인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김대호님 등이 처음에 소를 그리다가 마지막에 소의 몸통에 돼지의 다리를 같다 붙여서 그림을 완성시킨 것은 결국 그들은 소의 다리를 실제로 본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그린 것은 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돼지도 아닌, 동물이 아닌 것으로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을 중도 보수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52
그냥 당당히 합리적인 보수가 되시는 편이 사회적으로 그분들 개인적으로나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제 후배 중에서도 그분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유주의자가 있는데 걔는 자기가 좌파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고 우파라고 확실히 규정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은 달라도 크게 싸우지는 않죠.
Commented at 2009/03/29 15: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3/29 17:53
주로 구글신의 도움을 받습니다. 저 자료는 oecd 교육정보라는 곳에서 가져왔고요.
Commented by   at 2009/03/30 01:37
공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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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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