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념. 생각

 

 

즐겨 찾는 블로그인 김우재 님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포스팅을 봤다. 좌빨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인데 과학이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 경우에는 좌파적 신념)과는 어떤 관계를 맺느냐를 묻고 있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꺼리라서 몇 마디 주절거려본다.



과학과 좌파의 불화
과학,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학은 근대 이후로 좌파와 어떤 면에서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윈 이후로 생물학은 인간을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가? 다윈의 혁명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다윈 이전에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신의 창조뿐이었지만 우리는 이후로 인간의 진화적 역사를 파악하고 인간 본성을 설명할 강력한 도구를 손에 넣었다. 

생물학과 전통적인 좌파의 불화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생물학이 밝히는 인간의 본성들은 좌파들이 가정하고 있던 인간 본성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진화심리학적인 연구와 조사를 기반으로 봤을 때 인간에게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게다가 사적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특성이 있었다. 그런 인간관을 받아들인다면 마르크스가 주창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는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들 사이에는 선천적인 차이가 있다는 주장 또한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의 이상과 어긋나 보였다. 좌파는 오랫동안 인간에게는 선천적 특성이 있다는 주장을 듣지 않으려 해왔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은 이 주제를 매우 탁월하게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나는 핑커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지적은 옳다. 과학의 진리를 부정해서 좌파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진화심리학이 증거를 제시하기 힘든 분야이며,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야 없겠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도출한 결론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차이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무시하고서 정치사회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좌파가 더 견고하고 과학적인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인간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바꿀 수 없는지를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과학의 지식이고, 힘이다. 과학은 세상의 물적 토대를 설명해준다. 견고한 과학적 기초 위에 섰을 때 좌파의 주장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유전자변형식품의 문제
과학을 모르는 시민단체들은 유전자변형식품을 반대하면서 어리석게도 그것이 건강에 유해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유전자변형식품(GMO)는 건강을 위협하는가? 단적으로 말해 아니다.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전자를 조작한다면 인체에 해롭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으며, 사전 검사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식품 중 어떤 것도 위해성이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GMO가 건강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너무도 많이 퍼졌고, 좌파가 그런 잘못된 주장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건강을 위협한다는 잘못된 주장 말고도, 좌파가 유전자변형작물을 반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유전자변형작물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식량 증산을 증대시켜서 식량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다. 유전자변형작물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이미 지금도 세계의 식량 생산은 전 세계 인구를 먹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에서 수억 명이 굶주리는 건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의 모순 때문이다. 게다가 종자를 종자회사로부터 사야 하는 유전자변형작물은 전 세계에서 소농들을 더더욱 몰아낼 것이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제3세계의 농민들이 더 큰 피해를 받을 것이다. 유전자변형작물은 분명 식량 생산을 늘리고 생산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득이 농토에서 밀려날 소농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흐를까? 아니면, 세계적인 종자회사인 몬산토와 거대 기업농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것에 불과할까? 이것이 진정 좌파가 해야 할 질문이고, 좌파가 문제시해야 할 부분이다.

유전자변형생물에는 정말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도 있다. 자연의 안정성은 다양성에서 온다. 대규모 전염병이 돌아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유전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식물 역시도 마찬가지다. 공장에서 생산된 종자는 모두 똑같은 유전적 구성을 하고 있기에, 유전적 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 토착종들이 경쟁이 밀려 사라지고 유전적 구성이 단순해지면, 나중에 일어날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지고 생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유전자변형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면, 유전적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일에서 우리는 과학의 지식에 많이 의존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학을 알 필요가 있다.


과학과 신념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최초로 밝힌 다윈 이래로 생물학에는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허버트 스펜서는 즉각 다윈의 이론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여, 우월한 인간이 비천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진화론적으로 정당하다'는 사회다윈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자연도태를 막아서 인간종의 열화를 가져올 것이기에, '가슴이 아프더라도' 그들에 대한 자선이나 지원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 주장은 당시 백인 엘리트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했으며, 훗날 열등하다고 간주한 장애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단종 조치를 시행한 우생학이라는 끔찍한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어느 인종이나 민족의 우수성을 설명하려는 반동적인 시도는 아직까지도 잔재로 남아 있다.

사회다윈주의는 그 정치적 오류는 물론이고, 과학적으로도 잘못된 설명이었다. 인류의 유전적 차이는 의미 있는 범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백인과 흑인의 전반적인 유전적 차이보다, 같은 나라 사람들 간의 유전적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인류 문명의 시간적 단위는 '진화'를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다. 지금 당장 사회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전적 자질이 있더라도 그것이 100년 후에도 여전히 개체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리란 보장은 없다. 사회다윈주의는 과학을 정치적으로 그릇되게 사용한 부끄러운 예이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을 고수하는 신앙인들에게 누누이 말하듯이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종교나 정치의 영역으로 과학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천박할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훌륭한 신앙인은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 같은 것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을 찬양하고 믿을 수 있다. 진화론이나 현대 과학의 모든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신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건재할 수 있다. 자신의 믿음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의 '과학적 증거'에서 신의 섭리를 찾으려는 자들은 오히려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좌파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과학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과학은 우리에게 신념을 실현할 방법에 대한 지식을 주지만 신념 자체를 주지는 않는다. 개인의 정치적 신념은 더 넓은 경험으로 정해지고 변해간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스티브 제이 굴드 쪽에 더 동감하지만, 과학적으로는 리처드 도킨스 쪽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학은 과학이고, 지식이고 도구일 뿐이다. 

좌파는 인간 본성을 좀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옛 사회주의의 실패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던 것도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새로이 건설할 대안 체제는 인간 본성의 정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인간 본성은 결정론적이지 않으며, 폭력성, 이기심, 소유에 대한 욕망 등의 이면에는 나누려는 마음, 이타심, 연민들의 본성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대로 인간은 전적으로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다. 과학은 단지 이런 고전적인 통념을 다시 서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진화심리학의 내용들은 좌파의 이상이 (인간 본성에 위배되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사회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인지과학 연구는 인간은 '합리적으로 경제적 판단을 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신)고전파 자본주의의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잘 알 필요가 있고 오늘날의 과학은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지식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활용하자.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지배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서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어떤 과학 이론도 빈곤의 비참함을 정당화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물론 그럴 것이다. 우리의 죄는 정말 중대하며, 빈곤의 비참함이 존재하는 이상 좌파의 존재의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레옹 블롬이 감동적으로 말했듯이 사회주의는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


과학에는 틀림없이 빈곤의 비참함을 제거하고, 인류의 복지를 더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을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불평등한 세계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하고,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유한 세계의 성인병 환자들을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 자금이 투여되고 있지만,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말라리아로 수많은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120억 인구에게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는데도 기아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과학이 진정으로 세계의 진보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체제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것은 좌파의 참된 과제이다. 이 과제를 위해서라도 좌파는 과학을 알아야 한다.
과학이 진정으로 전 인류의 혜택이 될 그 날을 나는 소망한다.





덧글

  • 김우재 2009/03/18 18:07 # 삭제 답글

    훌륭하게 정리하셨네요. 다만 핑커의 논의는 더 나아가야할 지점에서 멈춘바가 있고,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논의되는 좌파와 과학의 관계는 우리쪽으로 넘어오면 조금 달라집니다. 근대라는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처럼,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조차 그리 할 필요는 없는데 그러고 있다는..
  • sonofspace 2009/03/19 13:01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 깜냥 내에서 쓴 것이라서 깊숙하게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사실 한국의 좌파는 과학과 불화하고 있다기보다는 아예 과학을 모르고 관심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좌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도 모르는 게 많아서 더 배워야겠습니다.
  • 언럭키즈 2009/03/18 22:39 # 답글

    과학과 정치는 서로 상생의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onofspace 2009/03/19 13:03 #

    과학이 세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세상에서, 세상을 움직여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 필요가 있겠죠.
  • Moonseer 2009/06/09 11:5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글을 발견했네요.

    링크 신고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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