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라면 맹자 정도는 읽어주시지.

만약 백성에게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이 없게 되니, 진실로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멋대로 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급기야 죄를 저지르고 나서야 잡아서 벌을 내리면 그것은 백성을 그물로 잡는 일이니, 어찌하여 어진 사람이 임금으로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로 쳐서 잡을 수 있겠습니까?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 然後而刑之, 是罔民也.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맹자, 양혜왕 상편 7장)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본래 보수는 사회지도층의 책임을 강조하는 편이다. 보수주의의 강력한 국가 모델인 가부장적 온정주의는 국가를 아버지로, 국민은 자식들로 본다. 이 모델에서는 자식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국민은 국가를 존경하고 따라야 하며,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처럼 국가는 국민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 왕정시대의 논리를 그대로 현대국가에 적용한 모양새이지만 적어도 사회지도층들이 제대로 이런 이념을 실천했을 때는 나라에 큰 해악은 없다.  

 

왕조시대에서 나라의 변란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왕의 허물이었다. 백성들의 반란이 일어나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폐륜적인 범죄가 일어나도, 가뭄이 들어도 일단은 다 '과인이 부덕한 소치'였다. 특히나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켰을 때는 무작정 반역도당이라고 처벌하지 않고 부득이하여 저지른 것으로 여겼으며, 해당 지역의 수령들의 죄를 물어 문책하고 파직하는 대응을 보였다. 오늘날 나쁘게 말한다면 문제의 근본은 건들지 않고 백성의 분노를 돌렸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왕조시대의 양반들은 이 정도의 성의는 보였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도리를 요구하는 것도 너무 과도한 일인가?

 

용산의 참사를 둘러싼 논쟁들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다. 불법행위가 어떻고, 불이 어떻게 붙었고, 전철연이 어떻고 하는 문제를 놓고 어이없는 진위 논쟁들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직접적인 화재 원인이 무엇이냐와 전철연의 비리로 논점을 흐리고 있다. 지금 그들이 불법을 저지른 게 중요한가? 무엇 때문에 불이 붙었는지가 중요한가? 전철연이 반국가단체라도 잘못은 경찰에 있다. 그들이 범죄자라도 죽음에 이르게 할 권리는 경찰에게 없다. 어째서 재개발 단지의 철거를 둘러싸고 매번 분쟁이 벌어지는지, 사태가 그렇게 된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나타난 현상만을 문제시하는 태도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아니 당신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이 땅의 보수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이 죄다 이 모양이다. 보수의 덕목인 책임감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책임자 처벌은 간데 없고 알량한 진상조사만을 외친다. 하기야 하는 꼴로 봐서는 책임감 같은 건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은 것 같다. '뉴라이트'를 표방한다는 한 의원은 도심 테러 운운하며, 한국을 테러범의 온상지로 둔갑시켰다. 국민을 테러범으로 규정하는 건 이제껏 누구도 한 적이 없었으니 새롭기는 정말 새롭다. 잘 되는 건 자기가 잘해서, 잘못은 모두 남탓으로 돌리는 이런 양아치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나라꼴이 우습다.    

 

마땅히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죄를 짓지 말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지, 죄를 짓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처벌하는 것이 그 잘난 법치인가. 맹자는 그런 걸 "백성을 그물로 쳐 잡는 일"이라고 혹평했다. 그런데 이명박 각하는 고기잡이에 재미를 단단히 들이신 것 같다. 앞으로 몇 명이나 그 그물에 걸릴지 정말 걱정된다.   

by sonofspace | 2009/01/30 17:48 | 생각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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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at 2009/02/02 16:05

제목 : 우리의 미래는 그들의 현재보다 아름답다
암울한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증거들 용산참사 사건이 일어나고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숭례문 방화사건이 기억나면서, 마치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누군가가 내게 거짓말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담하고 슬픈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폭력언론’(보수라는 이름도 아까운)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다. 화염병을 왜 던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번에 살해당한 ......more

Commented by 에톤 at 2009/01/30 18:30
우리나라 보수는 보수가 아니고, 진보는 진보가 아니죠.
Commented by 빌리밥 at 2009/01/30 23:26
진보는 진짜 보수의 줄임말
보수는 보통 수구꼴통의 줄임말..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1/31 11:40
그렇게 쉽게 양비론으로 비약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예컨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나 조순 전 서울시장 같은 경우는 괜찮은 보수거든요. 지금 한나라당의 홍준표나 원희룡 정도만 해도 용납할 수는 있는 수준...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주류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죠. 오히려 전여옥이나 신지로 같은 양아치들이 주류이니... 시장주의의 탈을 쓴 재벌주의자들, 부동산 이익 옹호자들이 보수라고 하고 다니는 것이 문제죠. 이념도 없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자들이 말이죠. 진보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자기 이익보다 자기 신념에 투철한 분들이 많죠.
Commented by 지식이패션인시대 at 2009/02/01 08:45
"이념도 없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자들"이라고 하시니, 바로 떠오르네요. 우리나라 국민들 거의 다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래서 '자기 이익보다 신념에 투철한 진보' 분들이랑 국민들이랑 별로 사이가 안 좋은 거로군요.
Commented by sonofspace at 2009/02/01 10:02
뭐, 전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어떤 지향하는 가치, 곧 이념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책임이 막중한 사회적 지도층과 일반 국민들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죠.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니까요. 신념에 투철하다고 해서 꼭 인기 있으리라는 법은 없죠. 아무래도 진보쪽의 신념은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으니까요. 그냥 그렇다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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