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3일
<행복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좋다
내가 이 책의 저자 벨 훅스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인터넷을 떠돌다 본 다음과 같은 글귀에서이다.
지배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라. 여자와 남자가 아주 똑같고 기계적으로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상호 배려의 비전을 갖고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라. 우리 모두가 그냥 우리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세상, 평화와 가능성의 세계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라. 페미니즘 혁명만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인종주의, 학벌주의, 제국주의 역시도 종식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하게 자기를 실현하는 여자와 남자가 된다면,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를 만들어 더불어 살면서 자유와 정의의 꿈, 그리고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현실에서 성취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난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말이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문제를 단순히 여자와 남자의 문제로 나누지 않아서 좋았다. '똑같이 기계적으로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상호 배려의 비전을 갖고 있는 세상'을 추구해서 좋았다. 비록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건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구절은 <행복한 페미니즘>의 서문 마지막 단락에 나온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에서 벨 훅스는 선언한다. "더 가까이 오라. 그러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오해, 페미니즘을 무작정 배격하는 안티 페미니스트는 물론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사람들, 일부의 페미니스들까지도 가지고 있는 오해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여성의 문제만을 신경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 차이는 뭘까?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하고 육아의 책임이 여성에게 주로 있다고 보는 건 성차별주의다. 그 때문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로 막히거나, 맞벌이하는 여성이 집안일까지 도맡게 된다면 그건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이다. 그렇지만 만약 페미니즘이 이 수준에서 그친다면 그건 반쪽짜리에 불과할 것이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역시도 성차별주의다. 그 때문에 부부간의 합의로 전업주부를 맡은 남성이 사회적인 멸시를 받는다면 그건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억압이다. 남자냐 여자냐를 떠나서 우리가 타고난 성 때문에 받아야 하는 모든 부당한 대우를 반대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벨 훅스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멋지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명제는 성차별주의가 몸에 밴 사람이 여자인가 남자인가 어린애인가 어른인가에 상관없이 그 모든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라는 점을 꼬집는다. -19쪽
사실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가장 급진적인 축에 속한다. 솔직히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인식까지 도달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과거에는 페미니즘이 주로 여성의 경제력 향상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반남성주의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남성의 것'으로 돌리고 여성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서도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적 사고가 존재하고, 경제력 향상과 사회 진출에 성공한 여성들이 사 회 전반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적 질서에 눈 감아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벨 훅스는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엘리트들의 기회주의적 페미니즘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페미니즘의 목표를 여성의 권익 찾기로 축소하면서, 혹은 그런 식으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페미니즘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는 컸지만, 한편으로는 가부장제의 질서에 기대려는 여성들의 모습도 여전했다. 사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소개팅에 나갔을 때는 왠만하면 남자측에서 식사나 술값을 낸다고 한다. 그리고 남녀관계에서 왠지 모르게 남자가 돈을 더 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난 역시 이런 압박감도 모른다;;;;). 이건 명백히 성차별적인 일이이지만, 아직껏 진지하게 문제제기되지 않았다.1)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려는 태도는 명백히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벨 훅스는 사회 전반의 성차별주의적 사고방식을 공격하지 않고, 경제력 향상이라는 개량주의적 목표에만 치중한 결과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나타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남자'가 아니라 '성차별주의'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에 피해를 받고 문제를 느끼는 남성들을 동지로 끌어안을 수 없다. 또한 성차별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는 여성을 변혁시킬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점을 열렬히 주장한다.
외부의 적과 맞서기 전에 우리는 내부의 적부터 소탕해야 한다. 그 위협적 존재, 그 적이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여자들이 자기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공표하고 변혁하지 않은 채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깃발을 치켜들고 있는 한, 페미니즘의 대의는 궁극적으로 훼손당하고 말 것이다. - 39쪽
이 책은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Feminism Is for Everybody)'이라는 주장을 중심으로 교육, 여성의 미, 계급, 인종, 노동, 폭력, 자녀교육, 결혼, 성, 사랑, 종교 등의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모두 여러 편의 글이 쏟아져나올 만한 넓은 내용들이라 여기서 정리하지는 못 하겠다. 딱 하나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인 '사랑'만을 말해보자.
페미니즘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 남녀관계의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성적으로 서로를 원하는 존재다. 남녀 사이에는 권력과 차별뿐만 아니라 사랑과 욕망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여성들에게 늘씬하고 섹스어필한, 혹은 귀엽고 고분고분한 여성을 원하는 남성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다이어트와 성형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같은 이유로 남성들의 키와 몸매 콤플렉스도, 출세지향적 태도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평가하는 눈에는 상대 성의 가치가 덮씌어져 있다. 사랑과 성적 만족을 원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성차별적인 시선에 자신을 맞춰나간다. 페미니즘의 원칙은 둘째 문제가 된다.
여기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남녀 쌍방이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선호이고, 어느 부분이 관습적인 성차별주의의 영향을 받은 건지가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런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것이 생물학적 본능이건, 사회문화적인 학습이건 간에 우리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를 고르는 행위를 할 때, 혹은 상대에게 선택받으려 할 때 성차별주의는 재생산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기보단 서로에게 구애되어 있고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그래서 남자 없이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 레즈비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단다(그렇지만 레즈비언끼리의 관계에서도 차별과 불평등한 관계가 나타난다고 한다. 역시 중요한 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문제이다). 벨 훅스 비슷한 유형의 주장을 한다.
압도적인 다수의 이성애자 여성들은 그들의 섹슈얼리티가 의미와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남성들에게 섹스 어필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전제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이 여성들은 동성(同性)간의 성적 결합, 자위, 독신 생활이 가부장 문화 안에서 남자들과 맺는 성관계와 똑같이 생기와 생명력을 돋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 - 199~200쪽
우리가 성적으로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2) 남녀의 결합이 더 나은 충일감을 위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면,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3)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솔로일 때도 역시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야 우리는 비로소 외로움에서 도망치듯이 아니라, 욕망에 부추김 받아서가 아니라, 드디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랑하기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남자와 여자에게 정해진 의무와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 같은 건 없으며, 자유롭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즘이 진정한 사랑을 할 가능성을 남녀 모두에게 열어준다고 믿는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언제나 우리를 굴레에서 자유로, 사랑이 없는 자리에서 사랑이 풍부한 자리로 데려간다. 상호 배려의 파트너십은 사랑의 기초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상호성이 존중되는 조건을 창출하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 운동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인지와 관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사랑은 인정과 돌봄과 책임과 헌신과 지식을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정의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를 통하여,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지배에 반대할 힘을 준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 226쪽
1) 문제가 크게 제기되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이런 관행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성차별주의의 피해를 보는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구애할 때 '투자'하는 것을 별로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투자'에 대한 불만은 소개팅 상대로 속칭 '폭탄'이 나오거나, 구애에 실패했을 때, 혹은 사귀다가 안 좋게 깨졌을 경우에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자기가 선물한 것 다 내놓으라고 패악질을 부리는 수도 있다고 한다. 안 좋다. 보다 많은 남성과 여성이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습득하여 누가 주도하는(돈을 대는)지를 떠나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데이트 관계가 수립되어야 하겠다.
2) 개인적으론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힘들 것 같다. 언젠가 재밌는 통계를 들었는데 인터넷 성인용품 판매점의 주고객은 20~30대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남성은 그럴 때 여성을 만나기 위해 돈을 쓰기를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유흥업소의 시장 규모를 생각해보면 남성이 성적 만족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여성과 비교도 할 수 없다.
3) 사실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성적 본능과 사랑, 욕망의 뒤얽힘, 그로 인해 남녀 서로 간의 희생과 지배는 좀더 세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개별적인 관계에서는 그 사이에 우애로운 모습이 나타나긴 해도 일반화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 by | 2008/11/13 00:54 | 마음을 울리다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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