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파멸을 앞두고 있고, 호걸들은 목숨을 바쳐 이를 막으려 합니다. 비뚤어졌지만 정당한 복수심에 불타는 악의는 거대한 대괴구를 끌고 차츰차츰 최후로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불길에 스러져갔고, 더 이상 아무런 수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소년은 일어섭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기에, 아버지의 질문에 답은 못 찾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소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행복은 불행 없이 얻을 수 없는가? 시대는 희생 없이 극복할 수 없는가?' 다이사쿠는 그 답을 모르지만, 세계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이언트 로보와 함께 펀치를 날립니다.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후 아래에서는 결정적인 네타들이 가득합니다. 애니를 안 보신 분이라면 절대! 보지 말 것을 권해드립니다)
(애니메이션을 감독한 이마가와 감독은 혼과 열혈을 그려낼줄 아는 감독이다. 그래서 감동도 1.5배에서 2.5배가 된다. 손이 불타고 있는 도몬 캇슈를 창조해낸 인물이기도 하니 오죽할까. '자이언트 로보: 지구 최후의 날'에서도 열혈 넘치는 캐릭터들을 다수 창조해냈다) 혼을 불어넣은 걸작
전 흔히 명작이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흥행으로도 매우 성공하고 이후의 애니메이션 업계 판도에 영향을 준 '대작' 애니. 또 다른 하나는 업계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흥행도 그럭저럭이지만 작품성이 뛰어난 '걸작' 애니. 로봇물의 방향을 바꾼 건담이나, 90년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한 에반게리온, 또는 모에 코드를 제대로 작렬한 하루히 같은 작품은 전자에 속할 겁니다. 지금 소개하는 '자이언트 로보: 지구를 정지하는 날'은 단연 후자에 속합니다.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 업계에 영향은커녕 후속작도 만들어지지 못했지만(원작만 같은 'GR 자이언트 로보'는 제외) 이 애니가 엄청난 명작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코하마 미츠테루가 창조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총집합,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의 열혈 넘치는 연출과 감동과 충격, 전율을 일으키는 스토리 플롯, 십수 년이 지난 오늘날 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엄청난 퀄리티의 작화와 극에 어울리는 웅장한 OST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초호화 스텝진을 구성하고 OST 녹음은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 오케스트라단에게 맡기는 등 문자 그대로 돈 지랄을 해댄 끝에, 제작비 문제로 7편의 OVA를 제작하는 데 7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돈을 땜빵하기 위해 유일하게 팔릴 만한 캐릭터인 긴레이를 주역으로 한 세 편의 외전을 제작하기까지 했고요. 이마가와 감독은 '진겟타, 세계 최후의 날'의 감독도 맡았지만 단 3화만에 너무 많은 예산을 썼다고 해서 전격 교체를 당하기까지 했으니 돈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나봅니다. 어쨌든 다행히(제작사에게는 다행이 아니겠지만) 자이언트 로보 때는 감독을 계속 맡을 수 있었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애니메이션을 완성시켰습니다.

('자이언트 로보'에는 여성 캐릭터가 일단은 두 명 등장한다. 하지만 사실상 긴레이 한 명이라고 봐도 좋다. 아니 한 명이다.... '자이언트 로보'는 '팔릴 만한' 미소녀, 혹은 미형 캐릭터가 필수가 된 현재의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상당히 다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그래도 긴레이의 인기는 상당해서 긴레이를 주역으로 한 '맨발의 긴레이', '철완 긴레이' '푸른 눈의 긴레이' 세 편의 외전이 만들어졌다. 후속작이 안 나오는 것은 더 이상 긴레이가 등장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뜨거운 아저씨들의 활약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은 만화 삼국지로 유명한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마가와 감독은 '원작 파괴자'라는 명성답게 기본 설정 외에 모든 것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 좋습니다. 원작에서 살아남은 부분은 자이언트 로보라는 로봇의 이름, 다이사쿠라는 소년이 주인공, 시계형 음성 콘트롤러로 조종, 국제 경찰 기구와 BF 단의 대립을 배경으로 함, 이 정도뿐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수호지, 삼국지, 철인 28호, 바벨 2세 등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거리낌 없이 집어넣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 제갈 공명이 적 세력 BF 단의 책사로 등장하는 등 캐릭터들의 이런 변화에 잔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자이언트 로보는 비록 로봇물이기는 하지만 이 애니의 중점은 로봇이 아니라 캐릭터에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사실 로봇물이 아니라 무협지 같은 호걸물, 협객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상최강의 로봇, 자이언트 로보'라고 소개되지만 솔직히 십걸집과 구대천왕 정도면 로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분명 이길 겁니다. 신행태보 대종, 흑선풍 철우(이규), 조용한 추죠 등 국제경찰기구의 엑스퍼트들과 충격의 알베르트를 비롯한 BF 단의 십걸집들의 위압감은 굉장합니다. 이 인간을 초월한 인간들의 대결이 로보의 활약보다 사실 더 두근거리고 박진감 넘칩니다(물론 로보의 듬직한 얼굴도 멋지지만요). 제가 그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대종 형님입니다. 제가 '아니키(형님)'라는 일본어를 알게 된 것도 여기서였고요. 물론 최근에는 그렌라간의 카미나가 아니키의 대명사겠지만 저는 대종 형님이 더 좋습니다. 껄렁껄렁해 보이지만 그릇이 크고, 굳은 의지와 배려심을 두루 갖춘 진정한 호걸이지요.

(알베르트와의 대결에서 가슴에 구멍이 뚤렸지만 대종은 '아니, 내가 이겼다!'라고 외친다. 필생의 라이벌과의 승부보다 다른 사람들과 자이언트 로보의 도피 시간을 벌기 위해 전자 네트 와이어를 지키는 것을 우선한 모습은 깊은 감명을 준다. 그 모습에 당황하고 대종의 죽음을 누구보다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알베르트의 모습도 인상적. 정말로 이것이말로 '라이벌'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런 실패는 얼마든지 있어. 대단한 일이 아냐.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뒤다'라는 대사도 좋아한다.) 그 외에도 단순 무식하지만 우직하고 순박한 철우, 호탕한 여걸로 등장하는 청면수 양지, 구대천왕의 하나이자 생명을 건 금기의 빅뱅 펀치를 사용하는 추죠 장관, 죽을 수 없는 남자 무라사메, 그리고 유일하게 매력적인 히로인인 긴레이에 이르기까지 멋진 캐릭터들로 가득합니다. 게다가 악역인 BF 단의 십걸집들도 모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충격의 알베르트의 모습은 그야말로 간지폭풍이라서 아군들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인 다이사쿠는 역시 애라서 철이 없고 이 아저씨들의 매력에는 상대가 안 되지요.
아쉬운 점은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이 기본적으로 '미완성' 작품이라는 데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자이언트 로보'는 총 26화 계획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지구가 정지하는 날'은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 앞뒤로 다른 에피소드들이 제작될 계획이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영영 만들어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양산박의 구대천왕도 다 등장하지 않고, 십걸집들도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죠. 누구나 작품 마지막에 바벨 2세의 모습을 한 빅 파이어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서 전율했을 테지만(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율만 남겨놓고 후속편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죠. GR 계획은 뭐고 바벨의 농성은 뭔지 팬들은 상상의 나래만 펼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행복은 불행 없이 얻을 수 없는가? 시대는 희생 없이 극복할 수 없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포함해, '자이언트 로보'가 팬들을 사로잡은 것은 이 질문의 무거움일 겁니다. 다이사쿠의 아버지가 다이사쿠에게 자이언트 로보를 건네며 던진 이 질문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테마로 기능합니다.
'지구가 정지하는 날'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시즈마 드라이브라는 완전 무공해 재생 에너지가 개발된 지구입니다. 이 놀라운 에너지의 등장으로 결함이 있는 화석 연료와 원자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인류는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룩합니다. 그러나 지구정복을 노리는 BF 단, 그리고 BF 단의 힘을 빌어 숙원을 이루려는 겐야에 의해 수수께끼의 시즈마 드라이브 정지 사건이 일어나고 모든 것을 시즈마 드라이브에 의지하고 있던 지구는 '정지'합니다. 이 지구 정지 작전에 맞서 자이언트 로보와 국제경찰기구가 싸우며, 시즈마 드라이브에 감춰진 진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진실을 만나는 것이 이 OVA의 주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그래서 크게 두 번 반전을 겪습니다. 작품 중반의 시즈마 드라이브에 얽힌 추악한 진실, 그리고 결말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전율과 감동의 진실.
작품 초반, 시즈마 드라이브의 개발자 중 하나인 프랑켄 폰 포그러 박사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는 매드 사이언티스로 등장합니다. 그는 10년 전 무리한 실험으로 한 나라를 소멸시켜버리고 지구 전역의 동력 기관을 정지시킨 '바슈탈의 참극'을 일으킨 인물로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1화에서의 연출은 정말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듯 광기에 가득찬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주변 인물의 석연치 않은 태도와, 포그러 박사의 아들임이 분명한 겐야의 복수심은 그 사실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는 의혹을 심어주죠.
이야기가 진행되며 작품 중반에 포그러 박사와 바슈탈 참극에 대한 진실이 밝혀집니다. 바슈탈의 참극이 포그러 박사가 아닌 다른 개발자들이 성급한 실험을 한 결과로 일어난 것이며, 포그러 박사는 최후까지 연구를 계속했다는 진실이 말이죠. 그럼에도 포그러 박사는 참극을 일으킨 '파괴자'로, 이후 시즈마 드라이드를 완성한 다른 박사들은 인류의 영웅으로 칭송을 받은 겁니다. 악역인 겐야의 정체는 포그러 박사의 아들인 엠마뉴엘 폰 포그러로, 그는 아버지의 희생을 딛고 완성한 시즈마 드라이브에 의해 번영을 누리면서도, 아버지를 세계의 파괴자로 비난하고 있는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요. 정말로 바슈탈의 참극을 일으킨 다른 과학자들은 오히려 인류의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끝까지 과학자로서 노력하다 죽은 자신의 아버지는 모든 죄를 덮어쓰고 있는 현실은 충분히 한 사람을 비뚤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시즈마 드라이브가 인류에게 아무리 놀라운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한낱 증오스러운 물건이었겠죠. 게다가 아버지의 최후의 유언이 "시즈마를 세워라"였으니 엠마뉴엘로서는 지구상의 시즈마 드라이브를 없애버리는 것이 삶이 목적이 된 것입니다. 모든 이들에게는 악마라고 비난받을지라도 그로서는 정당한 복수이며, 추악한 과거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단죄인 셈이죠.
그리나 작품의 마지막, 처음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두 번째는 복수심에 불타는 과학자로 묘사되던 프랑켄 폰 포그러 박사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이야기의 끝에 새로운 시즈마 드라이브의 빛이 지구를 감싸면서 지구는 다시 아름다운 저녁을 되찾습니다. 포그러 박사와 시즈마 드라이브의 진정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슬픈 비극을 덮은 채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파국에서 구원으로의 전환은 아주 극적으로 그려집니다.
(샘플이 세 개가 모이고 그 안에 암호화어 있던 포그러 박사의 메시지가 흘러나오면서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이때의 포그러 박사는 정말로 위대한 과학자. 감동의 눈물을 안겨준다. 지구를 영원한 암흑에 잠기게 할 줄로 알았던 샘플의 정체는 사실 시즈마 드라이브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빅파이어는 이것을 알고 있던 걸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는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하는 날'은 사실 굉장히 어두운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극은 점차 어두워지고 많은 호걸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선악의 구도는 분명하지 않으며 무대가 되는 사건도 실상 불행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대종, 양지, 긴레이뿐만 아니라 포그러 박사와 사건을 일으킨 엠마뉴엘조차도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자입니다. 다이사쿠의 아버지는 다이사쿠에게 자이언트 로보를 주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인 '행복은 불행 없이 얻을 수 없는가? 시대는 희생 없이 극복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다이사쿠는 끝까지 고민하지만 답을 내지 못합니다. 게다가 작품 내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행복을 위한 불행을 겪고,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희생을 합니다. 그들의 불행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구는 정말로 완전히 정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행복은 불행 없이 얻을 수 없으며, 시대는 희생 없이 극복할 수 없는 걸까요? 이 무거운 질문은 다이사쿠에게만이 아니라, 작품 속의, 그리고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집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가요?
희생 위에 쌓아올린 현재
저희 어머니는 세 살 때 아버지, 그러니까 저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위로는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외할머니의 뱃속에는 동생이 있었지요. 그때부터 외할머니는 홀몸으로 여섯 자녀를 키우게 됩니다. 외가집은 1950년대 당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난한 농가였고 의지할 친척들도 없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농사일과 농작물을 읍내에 나가 파는 행상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는 결코 알 수 없을 고난이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외할머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잘 길렀고 모두 다 결혼도 시켜 한 일가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태어난 것이고, 아직은 어린 제 외가 쪽 조카(외할머니에게는 증손자)들도 태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기억을 할 만한 나이 때에 외할머니는 이미 치매에 걸려 계셨고, 제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셔서 큰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주로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들이죠. 어머니는 언제나 외할머니가 자식들 기르느냐고 고생만 하시다 이제 다 길러놓고 조금 편하게 지나게 될 수 있게 되자 병이 드셔 돌아가시게 된 일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렇게 고생만 하다 가시게 된 일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비단 저희 집안의 사연만은 아닐 겁니다. 흔히 말하듯 가난하고 힘든 시절 우리 조부모님, 그리고 부모님들은 온갖 고생을 하며, 많은 희생을 하며 자식들을 길렀고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생을 하고, 희생을 한 그분들은 호사 한 번 누리지 못하고 한평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험난한 '시대를 넘기 위해', 자식들에게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스스로 불행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가족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희생을 거쳐 시대를 넘어왔으며, 불행을 통해 행복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가족사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날 이나마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도 무수한 피가 흘렀습니다. 학생들이 총탄에 스러져갔던 4.19, 학살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5.18, 70~80년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던 수많은 열사들. 더 멀리 가보자면 3.1 운동을 위시한 선조들의 독립 운동 역시 우리의 삶을 만든 중요한 일들이었을 겁니다. 필시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은 그런 한 사람 한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더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삽니다. 그렇지만 정작 희생을 한 그 당사자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영역만은 아닙니다. 언제나 자랑스럽게 외치듯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그간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왔으며 6.25 직후 세계 최빈국에서 현재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사에는 경제 성장과 기업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착취와 탄압의 역사가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만 여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으로 '수출'했으며 그들이 보내온 외화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일협정으로 정신대 및 강제 징용에 대한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았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해,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여러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경제사에도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생을 한, 혹은 당한 사람들은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가장 큰 혜택은 그 희생과는 상관없는, 혹은 희생을 강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해보면 씁쓸해집니다.
아마도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럴 겁니다. 어떤 일들에서든, 또는 어떤 사건에서든 책임과 희생은 동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누군가는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많은 희생을 합니다. 역사에 희생은 불가피해 보이고, 그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문명은 발전합니다.
불행 없는 행복, 희생이 없는 시대
'자이언트 로보'의 세계 역시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대종은 전자 네트 와이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합니다. 양지 역시 적과 자폭하죠. 철우는 다이사쿠를 지키기 위해 총탄을 뒤집어씁니다. 무라사메는 불사신의 몸을 버려가며 긴레이의 길을 열어줍니다. 추죠 장관도 생명과 바꿔 대괴구를 멈추려 합니다. 그리고 긴레이는 목숨을 건 거대 텔레포트를 실행하고, 결국 은 방울(銀鈴)만 남긴 채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다이사쿠는 아버지의 유언을 되새겨 불행 없이 행복을 얻고, 희생 없이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지만, 그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자신도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불행 없이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인지, 희생 없이 시대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이사쿠는 그런 세상 앞에 주저앉아버립니다.
(소년이 일어서고, 로보도 함께 일어선다. 멋진 어른들은 소년이 가는 길을 열어준다. 어떻게 보면 '자이언트 로보'는 소년의 성장기이며, 소년이 비뚤어지거나 상처받지 않고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는 멋진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반면 작중 다이사쿠와 오버랩되는 겐야는 그런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으며 그 결과 비뚤어졌다.)
그렇지만, 다이사쿠는 다시 일어섭니다. 답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다이사쿠는 싸우기를 선택합니다. 그 길이 긴레이를 희생시키는 일이 될지 모르지만, 더 이상 남아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이사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그래서 다이사쿠는 눈물을 흘리면서 로보와 함께 주먹을 휘두릅니다. 불행이, 희생이 무조건 싫다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그것이 불가피한 길이라면 괴로워도 가야만 한다는 '어른'의 마음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이언트 로보'에서의 희생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을 뿐 결코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대종도, 양지도, 철우도, 추죠 장관도, 무라사메도, 긴레이도, 모두 자기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포그러 박사 역시도 진정한 아름다운 저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이 바란 것은 언제나 '자신'의 희생으로 인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후손들을 위해 치룬 희생 역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행복은 불행 없이 얻을 수 없는가? 시대는 희생 없이 극복할 수 없는가?' 저 역시 다이사쿠처럼 답을 낼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다이사쿠처럼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대종처럼, 그리고 긴레이처럼,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때로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그 정치적 자유로 열사들을 폄훼하기에 바쁜, 또 노동자 투쟁의 결과물을 누리면서 노조를 비난하는 그런 '무임승차자'들을 보면 화도 납니다. 서독의 광부와 간호사들, 정신대 할머니들,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과거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으로 형성된 거대 기업의 현재를 보면 과연 그것이 정당한 희생이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 희생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겐야처럼 격분하여 '누구 덕분인 줄 알고!'라고 외치고 싶어지고, 때로 그 부정의한 모습에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는 그런 희생으로 이루어졌을지라도, 아니 바로 그런 귀중한 희생으로 만들어졌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포그러 박사가 자신이 모든 죄를 덮어 쓰고 비난당했음에도 시즈마 드라이브가 가져다준 아름다운 밤에 만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피를 자양분으로 진행되어온 그러한 역사 앞에 미약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적어도 타인을 희생시키지는 않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고 희생으로 이루어진 '추악한 과거를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희생 없이 시대를 극복해오지 못한 역사였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앞으로의 세대는 희생 없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기 위해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저는 '자이언트 로보'에서 스러져간 호걸들의 마음이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펀치를 날리는 다이사쿠의 마음이라고, 자기자신을 바쳐 역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의 뜻이었다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부모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부수고, 불행 없이 행복을 얻고, 희생 없이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지금은 아니더라도 다음 세대, 그리고 또 다음 세대에는 가능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들의 빅파이어를 위하여!' 제발 후속작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