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에서 엘리트로, 민주당의 변화

 

 

19971월 갤럽 여론조사는 다음과 같은 정당지지도 조사결과를 싣고 있다.

 

신한국당(25.2%), 국민회의(20.3%), 자민련 (10.6%), 민주당 (5.6%). 없다(30.6%) 알다시피 신한국당은 새누리당의 전신이고, 국민회의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다. 당시 이 두 당의 차이는 5%밖에 안 났고 신한국당의 지지율도 30%를 넘지 않았다(참고로 여기의 민주당은 지금 더민당 하고는 관계없다. 나중에 이 당은 신한국당과 합당한다)


2015년 내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39~42%였고, 새정연의 지지율은 21~28%였다. 2015년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20% 초반에 머물렀고 새누리당과 20% 차이가 날 때도 있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것이다. 9725.2%에 불과했던 보수정당의 지지율은 40%까지 올라갔는가?

 

두 번째. 같은 여론조사에서 광주/전라 유권자들은 72.6%가 국민회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5년 광주/전라에서 새정연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45%였고 점점 떨어져 지금은 30%. 오랜 노력 끝에 지역주의가 완화된 것일까?

 

971월 신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32.7%, 부산/경남에서 47.3%의 지지(당시 대통령인 김영이 경남 사람이었다)를 받았다. 2015년 새누리당은 대구/경북에서 55~60%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건 박근혜가 대통령이니 그렇다 치자. 놀라운 건 부산/경남에서도 50%를 넘나드는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호남에서는 지역주의가 완화되었고, 영남에서는 더 심해졌다는 결론을 내놓을 수도 있다. 나는 새누리당은 지지층을 더욱 결집시키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점점 지지층을 잃고 있다는 결론으로 받아들인다.

(모두 지역 표본은 100~200명으로 작다는 걸 밝혀둔다. 하지만 전체적 추이를 살피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세 번째, 971월 여론조사에서 농어업 종사자는 신한국당보다 국민회의를 더 많이 지지했다.(23.1% 26.2%) 블루칼라 노동자는 거의 차이 없었고(19.6% 19.7%) 화이트칼라는 근소하게 국민회의가 앞선다.(17.9% 19.6%) 직업별 구분에서 국민회의가 신한국당보다 높은 지지를 받은 이 세 영역으로 농어민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났으며, 지지 직업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97년 1월


 

신한국당

국민회의

//어업

23.1%

26.2%

블루칼라

19.6%

19.9%

화이트칼라

17.9%

19.6



그런데 20151월의 양상은 정반대다. 농어업 종사자의 57%가 새누리당을 지지하며, 새정연을 지지하는 건 19%뿐이었다. 블루칼라 노동자의 경우도 큰 차이가 난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새정연이 근소하게 앞서며, 여기서는 화이트칼라가 새정연 지지층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 1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어업

57%

19%

블루칼라

41%

25%

화이트칼라

30%

33%



97년 국민회의의 지지층 1,2위는 농어민과 블루칼라였는데 2015년 새정연의 지지층 1,2위는 화이트칼라와 학생으로 변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나?

 

 

97년 국민회의는 소득이 가장 적은 사람(70만 원 이하)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151월 새정연은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에게서 가장 적은 지지를 받았다이 패턴은 2015년 내내 계속 똑같이 나타난다아마 다른 해에도 그랬을 것이다. 



97년 1월



 

신한국당

국민회의

110만 원 이상

25.4%

18%

71만 원~100만 원

24.9%

18.8%

70만 원 미만

25.1

24.4%




2015년 1월


 

새누리당

새정치국민회의

/중상

51%

24%

44%

25%

중하

35%

26%

44%

20%


97년 국민회의는 농어민, 블루칼라 등 경제적 하위계층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고학력의 화이트칼라에게서 주로 지지를 받으며 하위계층은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흥미로운 결과다.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통념이 퍼져 있다. 그러나 97년의 여론조사는 그렇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회의는 가난한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그 이후 잃어버린 것이다. 왜 민주당은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지지를 잃어버렸나? 새누리당에 투표를 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을 보고 국민이 무식하다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니 하는 소리만 한다면 그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시 호남 출신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저런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그런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하나의 데이터만으로 결론을 내리긴 부족하지만, 좀 더 여론조사 결과를 모아본다면 지지층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일본은 할 만큼 했다?

 

논란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 박유하는 고노 담화의 가치와 성과를 인정하자고 이야기한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된 이상 고노 담화에서 밝힌 정도가 일본이 할 수 있는 사과의 최선이라고 말이다. 그 후 조성된 아시아여성평화기금 또한 형식이 민간일 뿐 정부 출연이 90%이니 사실상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속죄의 마음이 담긴 보상금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계속해 국가 차원의 배상과 법적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일본은 이미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그 사과도 못 받아들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니 일본에서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이제까지의 성과도 사라져버린다. 이제는 일본의 사과를 인정하고 양국의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 내가 읽기에 저자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며칠 전 한일 양국 정부간 타결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이 합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에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입장을 본다.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우리 한국에겐 일본 정부의 사과를 강제할 만한 힘이 없다, 양국의 협력을 바라는 미국의 압박이 심하다, 외교라는 건 양쪽이 양보하는 타협이 아니겠느냐... 이 모든 변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여기서 만족하자.


과연 그러한가.

 

과거의 불가능, 현재의 현실

 

아베 총리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며 사과했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직접 낸다. 이 정도면 진일보한 성과가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까지 일본이 절대 받지 않을 요구를 하며 싸움만 할 것인가? 이러다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고 영영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나도 이 말들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마디 덧붙인다. ‘현재까지는

 

현재까지는일본은 절대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의 국가범죄로서 인정할 마음이 없다. ‘현재까지는우리에게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낼 만한 힘이 부족하다. ‘현재까지는국제관계의 구조도 일본의 사과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다. ‘현재까지는우리가 바라는 것, 즉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이뤄내기 불가능하다. ‘현재까지는분명 그렇다. 하지만 현재까지만그렇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과거의 불가능을 현재의 현실로 만들어낸다. 1930년대 강대한 일본제국의 식민지에서 조선이 독립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립할 줄 몰랐으니까 많은 이들이 부역하고 배반했다. 그러나 독립의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200년 전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흑인 노예가 시민권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오늘날 흑인 대통령을 보고 있다. 신분의 벽도, 성별의 벽도 하물며 베를린 장벽도 영원히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많은 현실의 벽이 있었나? 그리고 역사의 진전과 함께 그 높고 견고한 벽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허물어져갔던가.

 

마르크스는 인간은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나간다고 썼다. 이 말은 우리가 구조적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에 따라 주어진 조건은 달라지는 법이다. 적어도 우리 후손들은 우리와 다른 조건 아래에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인간은 전진해왔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역사적 유물론이다.

 

현재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진실과 정의를 포기하는 건 긴 역사적 전망을 갖지 못한 태도다. 현재는 불가능해도 미래에는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이란 발언은 그래서 몰역사적이다. 10년 후가 안 되면 100년 후에라도 진정한 진실과 정의는 달성되어야 한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렇게 오래 걸린다면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텐데 어떻게 책임질 테냐?”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이 사안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신다고 끝나는 일인가? 성노예로 끌려간 모든 당사자가 죽고 없어지면 더 이상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 지배국가가 피지배국의 국민에게 저지른 범죄이며, 인류의 존엄성을 훼손한 만행이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할머니들이 일본에 공식적인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저 개인 차원의 만족과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다. 끔찍한 범죄에 대한 반성,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기 위해, 그리하여 정의가 이 땅 위에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고, 누군가는 계속해 고발의 의무를 져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들을 위한 지원금 얼마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국민모금으로 해야 할 일도 아니다. 혹이나 할머니들의 생계가 어렵다면, 그것을 책임져야 할 것은 다른 아닌 한국 정부다. 나는 할머니들이 끝내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세상을 뜨신다면, 그 사과를 받아낼 책임을 정부가 위임받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를 계승한 국가라면, 100년이든 200년이든 그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수탈한 일본제국으로부터 이어진 국가라면,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일본과의 협력과 우호 관계를 들어 화해의 필요성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일본과의 적대행위로 나타날 이유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민족문제를 빌미로 한 극우적 책동일 뿐,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이 의무를 잊지 않는다면 역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언젠가 일본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언젠가 일본이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것이냐고 회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난 역사를 믿는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을 믿는다.

 

한 해가 가고 이제 또 다른 해가 떠오를 것이다.


두 명의 여성 대통령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이 칠레에 가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을 만났나봅니다. 둘은 여성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은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는 육군 소장으로서 자기 휘하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습니다.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도 공군 소장이었는데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킬 때 합법 정부(좌파인 아옌데 정권)의 편에 서다 고문을 당해 죽습니다. 피노체트는 박정희를 가장 존경했다고 합니다.

 

허나 아버지가 누구냐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본인의 삶은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죽은 후 조용히 은거하며 살았습니다. 전두환이 용돈을 챙겨주는 등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화 이후 박근혜는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변변한 행정 경험도, 법안 발의도 없지만 그녀는 선거의 여왕이라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본래 의대생이었지만 탄압으로 인해 의사로서 살지 못했으며, 외국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군부독재정권의 피해자를 돌보며 정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민주화로 피노체트가 물러난 이후 본격적으로 공직에 참여해 보건복지부와 국방부 장관을 맡아 국민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2006년 첫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칠레는 대통령 중임은 가능하지만 연임은 안 됩니다. 바첼레트의 첫번째 임기는 2006~2010년이고 2013년 말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허나 과거가 큰 허물이겠습니까 현재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지...

 

2010년 칠레에서 진도 8.8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 바첼레트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현장에서 사태수습을 진두 지휘해 피해 확산을 막았습니다. 임기 말이었음에도 마지막 날까지 이재민들 구호에 최선을 다해 대통령 지지도가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2014년에 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한층 발전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 국제사회로부터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 지금은 칠레에 가 있죠?

 

두 여성 대통령이 만났다는 것만으로 둘이 닮았다고 말하는 언론을 보고 실소가 일어나 잠깐 이야기해봤습니다. 칠레 바첼레트 대통령에게 실례이지 아닐까요. 


잊어버린 사람이 잊지 않은 사람에게.


1년 전 일입니다. 오전 10시쯤 진도 앞바다에서 배 사고가 났다는 속보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승객 전원 구출이라고 적혀 있기에 다행이구나 했습니다. 오후에, 다시 보니 구출 소식은 실종 소식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슬픈 소식들, 비통과 경악, 이루어지지 못한 애원과 비겁한 회피, 무력함과 분노, 그리고 절망……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조금씩 감정도 엷어져갔습니다. 두 달쯤 후에는 생각도 안 났습니다. 간혹 가다 소식을 들을 때만 떠올랐습니다. 광화문을 지나다 농성장을 봤을 때만,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봤을 때문 잠시 슬퍼하고 다시 웃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제가 잊어버릴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눈과 귀에 다른 정보들이 계속 쌓여가기에 망각은 쉽게 일어납니다. 저는 세월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실 미안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 기억이 상기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결국 시신으로 돌아온 학생들의 생전 사진을 볼 때, 즐겁게 떠들던 그들의 영상을 볼 때 제발 이렇게 슬픈 이야기는 그만해라는 생각이 속에서 올라왔습니다. 그 영상들은 마치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히 사니?’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성은 변호를 하지만, 감정은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울먹입니다.

 

전 그래서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 좀 하라는 분들을 이해합니다. 이제 그만 잊고 살고 싶은데, 마음을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심정을 이해합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 왜 자신을 괴롭게 만드냐고 말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불편함이 있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런 분들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분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하다는 건 마음속 어디선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솟아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소중히 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리가 아직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한 달에 한 번도 그날의 비극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1년이 더 지나면, 10년이 더 지나면 가물가물해질 겁니다. 그러나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은, 친구를 잃은 사람은 잊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너무도 소중한 걸 잃어버렸기에 떠나보내지 못합니다. 그 앞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조용히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때 듣기 싫다고 외면하지 않는 게 잊어버린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세월호는 이미 정치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세월호 희생자를 애통해하는 것도 정치적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죽음을 슬퍼하면 좌, 슬퍼하지 않으면 우이런 말도 안 되는 구분이 현실이 되어갑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정치라지만, 애도의 감정과 행동이 어째서 진영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까? 국가적 비극은 통합의 계기가 되어야 마땅할진대 어째서 이념 대립의 의제가 되어갑니까? 이 문제를 이념 대립으로 만든 건 한쪽의 잘못이 더욱 크지만 한쪽의 잘못만은 아닐 터입니다. 정치의 무능함입니까, 사회문화의 저열함입니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바로 고쳐지지 않은 채 계속 현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의 한은 풀리지 않은 채 곪아 터져가고 있습니다. 한이 풀이지 않은 영혼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이 풀리지 않은 마음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 사람의 마음을 짓밟습니다. 세월호는 비극이니까 거기 그대로 놓고 묻자는 말도 있습니다. 허나 천명(天命)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재(人災)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묻어둘 일이 아니라 아프게 계속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세월호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잊지 않은 이에게 잊으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님은 갔지만님을 보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은 지금 세월호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게 진짜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아, 세상의 거친 폭언과 비방 앞에서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슬픔의 노래만이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해의 부족, 상상력의 빈곤

결국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한다 속삭이며 손을 꼭 잡고 함께 누운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아이를 낳기 위해 어머니가 참으신 고통을 아이가 알지 못한다. 누군가 울분에 차서 예리한 나이프로 손가락을 잘랐다.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걸 봐도, 참 아프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다른 이의 슬픔도 기쁨도 고통도 나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공감(共感)'이라는 건 사실 진정 같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마음을 생각해볼 뿐이다.

 

그러니 인정하자. 그저 스스로를 미루어 보아 다른 이의 마음을 짐작해보는 것(推己及人). 그것이 한낱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나는 당연히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감히 안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한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더 쉽게 다른 이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애초에 상상을 못한다면 경험이 아무리 쌓여도 소용없다. 공감능력이란 사실은 상상력의 소산인지 모른다. 같은 일을 겪어서가 아니라, 같은 일을 겪는다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에게 아렌트가 붙인 죄목은 '생각하지 않는 죄'였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비난에 바쁘다. 부모들이 돈과 권력을 탐해서 아직도 떼를 쓴다고 말이다. 그들의 상상력은 1차원적 욕망에 머울러서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한다. 생각을 틀에 가두는 세상에서, 즉물적 욕망만을 전시하는 세상에서, 상상력은 말살되어간다. 자신이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기보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면서, 상대에게 야비한 눈을 흘긴다. 그들에게 주어야 할 건 논리와 팩트가 아니라, 훈계와 설득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마음을 떠올릴 줄 아는 상상력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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