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2일
3년.
2005년 인터넷 구인 광고
'기륭전자(주)에서 일할 분'
월 64만 1,850원
당시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임금
그래도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3년
그러던 어느날
"아줌마, 문자로 해고됐다고 했는데
왜 나왔어요?"
'아줌마'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처럼 출근했던 '아줌마'는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을 하다 돌아갔다.
이후 '아줌마'들에게 도착하는
같은 문자 메시지들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치 마시고…
해고 이유는 다양했다.
결근 잡담 말대꾸
그리고
'노동조합 가입'
2005년 7월
노동조합에 가입한 200여명이
해고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되고
부당해고에 맞선 복직투쟁을
시작한다.
"기계가 뻑뻑하면 기름도 치고 닦아서 쓴다.
결국 우리 비정규직은 기계만도 못한,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존재였던 거다."
-
그러나 그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를 줄
아무도 몰랐다.
2008년 8월 현재까지
3년이 흐른다.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단식, 삭발, 3보 1배, 고공 투쟁,
노숙 투쟁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 기륭전자 노조 농성 1040일 되던 날
여성 조합원 인사말 중
그리고 목숨을 건
단식
기륭 여성노동자들의 몸 상태가
이미 의학적 한계를 넘어섰다.
몸에 저장돼 있던 영양소를 다 소모했고,
이들의 심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폐에는 물이 차 있는 상태다.
- 보건연합
8월 8일 현재
두 명의 조합원은
단식 59일째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858만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30% 선
우리나라는 53~54%-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그리고
20대 임금 노동자의
49%가
비정규직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들이 소비를 늘리지 않으니
장기적으로 국내 소비력이 떨어져
경제 성장의 기반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 지금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빈민비율은 러시아 등
준 독재형 개발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30%에 도달할 것이고,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은
무너지고 말 것"
박노자 교수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
참고자료
'잡담했다고, 말대꾸했다고…' 죽은 목숨 '1040일'
오마이뉴스 (
경향신문 '비정규직 800만 시대' 시리즈 (1),(3),(4)
'기륭전자 노동자 단식 60일…'
'얼마나 더 많은 목숨 보태져야…'
뉴시스 (
사진자료
기륭전자 분회
http://cafe.naver.com/kiryung
연출
구성 장 현
단식 중인 두 명의 여성 조합원은
8월 12일 현재
소금과 효소 섭취 및
강제병원 후송 및 응급조치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그동안 ebs 지식채널을 만들어온
광우병 관련 영상을 만든 게 밉보여서 다른 보직으로 쫓겨났다고....
아무튼 이명박 돌대가리는 양심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다 내쫓고 자기 같은 빠가들만 기용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나라와 사회가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두려워집니다.
공자가 말하길 "나라에 도가 없으면 부귀를 누리는 것이 수치이다(邦無道, 富且貴焉恥也)"라고 했는데
지금 이 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승자독식의 경제 구조에서는 말이지요....
비정규직,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회든지 계급이 분리되고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오래 지탱한 적이 없습니다.
"사정은 알겠지만, 내 인생이 급해!"라는 사람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만.....
분명한 건 내가 뱉어놓은 차디찬 이기심의 칼날은 언젠가 자신에게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이지요. 다음 같은 말처럼요.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시
ps. 단식을 하고 있는 분들은 다행히 지금은 병원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단식은 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70일이 넘었나보네요...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기륭전자에서는 매일 저녁 촛불집회가 진행 중이고,
지지 단식도 여러 곳에서 하고 있습니다다. 저도 참여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 by | 2008/08/22 23:22 | 생각 | 트랙백 | 덧글(0)





